[ 독자와 함께 ] 2003년01월08일 제442호 

‘조촐한’ 대통령을 보고 싶다

439호 표지이야기, 그 뒤

‘껍데기는 가라’의 시인 신동엽이 쓴 시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다.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대통령 하면 동사무소 벽에 걸린 근엄한 얼굴의 사진부터 떠올리는 우리로서는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 장면들이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진짜로 이런 대통령이 되고 싶은가 보다.

당선 직후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에 가서도 그 흔한 호텔 다 물리치고 민박집에 머물고, 경호원들이 놀라게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아무하고나 불쑥불쑥 악수했다고 한다. 여기저기서 “진짜 대통령 맞아” 하는 소리가 들리고. 심지어 어느 날엔가는 경호원들 다 뿌리치고 여의도 민주당사 근처의 대중 사우나에 혼자서 나타나기도 했다. 생각해보라, 목욕탕에서 벌거벗은 대통령과 마주쳤을 때의 쑥스러움과 즐거움을.

지난해 12월25일 아들을 장가보낼 때도 그랬다.

엄격한 경호 때문에 하객들이 불편해하기는 했지만, 어느 여염집 혼사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정치인들은 가뭄에 콩나듯 했고, 그 대신 고향 김해에서 모처럼 나들이 나온 시골 아낙네들이 노 당선자의 손을 잡고 기뻐서 팔짝팔짝 뛰는 모습이 더 자주 눈에 띄었다. 아들의 직장 상사가 “건호 선배입니다” 하고 인사하자 노 당선자는 “우리 아들, 잘 좀 봐주십시오”라고 오히려 고개를 숙이는 등 ‘아버지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기도 했다. 나온 음식도 콜라·사이다에 떡으로 조촐하고 수수했다.

5년 뒤면 아들 건호씨가 낳을 손녀()가 5살쯤 될 때다.

그때, 청와대 뒷길 어느 모퉁이에서 꽃리본 단 손녀를 자전거에 태우고 페달을 밟는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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