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와 함께 ] 2003년01월02일 제441호 

핵은 핵, 촛불은 촛불

439호 표지이야기, 그 뒤

효순과 미선의 부모는 12월28일 오전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를 만났다. 이틀 전 연락이 와 범대위 관계자들과 함께 민주당사를 찾았다. 노 당선자는 “북한 핵문제를 먼저 풀어야 하니, 반미시위는 자제해달라”는 당부를 했다. 효순이 아빠 신현수씨는 면담을 마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당선자 얘기를 죽 들은 다음에 부시 사과,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미군 지휘관 한국 법정에서 처벌 등 10개항을 포함해 유족들이 간절히 바라는 추모공원 얘기도 꺼냈는데, 확답을 피하시더라고요. 아무래도 이제는 한 나라의 원수로 국내외 일을 같이 풀어야 할 분이니까….” 그날 오후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신씨는 “그분의 처지를 이해한다”고 말하면서도 수화기 너머에서 내내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듯했다.

양쪽 아버지들은 농한기인 겨울철마다 건축일을 나갔지만 이번 겨울은 그마저 포기했다. 신씨는 “일 나가면 사람들이 ‘어떻게 돼가느냐’ 관심 갖고 물어오지만 일일이 대답하기도 힘들고 애 생각나는 것도 싫어서 그냥 있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2002년 마지막 날 열린 전국적 추모시위에 하루 앞서 광적면 면소재지에서 이웃과 함께 조촐한 추모제를 연다. 그러고 나서 “무엇을 할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겠다”고 한다.

<한겨레21>은 편집회의에서 만장일치로 미선이 효순이를 2002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긴 설명도 논의도 필요 없었다. 두 소녀의 삶을 돌아보기 위해 마을을 찾았을 때 풍경은 스산했다. 부모를 만났다. 가급적 많은 얘기를 들어야 했지만 자꾸 묻기가 민망했다. 친구 신애와 다희는 “아직도 많이 힘들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대신 신애가 효순·미선에 대한 추억담을 두 차례 이메일로 보내줬다. 남자친구 얘기, 학교 수업 태도, 액세서리 취향까지…. 부모도 모르는 또래의 비밀들이었다. 기사에는 이 사연을 넣지 않았다. 전국적으로 수십만개의 촛불을 일렁이게 한 주인공이기 전에 효순이 미선이는 남몰래 간직해야 할 추억이 있는 평범한 소녀들이기 때문이다.

후기를 쓰는 지금 상황도 기사를 쓸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체 뭘 써야 할까. 마감 시한이 넘어간 지 한참이 지났지만 모니터만 쳐다보고 앉아 있다. 입 속에서는 자꾸 이 말만 맴돈다.

핵은 핵이고 촛불은 촛불이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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