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3호 표지이야기, 그 뒤
후보단일화를 표지이야기로 다룬 <한겨레21> 433호를 다시 읽어본다. 독자들에게 “꿈도 꾸지 말라”고 암시하는 대목이 여기저기 깔려 있다. 애초 편집장이 회의에서 “후보단일화를 표지로 다루자”고 제안했을 때도 “다들 속셈은 따로 있으면서 그저 하는 말인데 뭘 표지까지로나…. 어차피 안 될 겁니다”라며 반대했다.
11월15일 밤 10시30분 노무현·정몽준 두 후보가 담판을 짓기로 한 국회로 차를 몰고 가면서도 “에이! 몸도 피곤한데 그냥 집으로 가버릴까. 어차피 뻔한 결과일 텐데”라는 마음이 굴뚝같았다.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정당 출입만 10년이 넘는다는 어느 베테랑 기자는 미리 ‘회담 결렬 기사’를 회사로 보내놓고는 저녁 반주에 불쾌하게 취해 비틀거리며 의사당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 시간 그 신문사의 윤전기는 숨가쁘게 돌아가, 회담 결렬을 보도하는 가판신문이 서울 시내에 뿌려졌다. 1988년 광주청문회 이후 국회에 가장 많은 기자가 모였다는 그날 밤. 회담 성사를 예상했다고 뒤늦게 나서는 기자가 있다면 그의 양심을 의심해봐야 할 것이다.
그랬다. 이해득실의 궤도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한국 정치의 계산법으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어떻게 대권을 놓고 벌이는 건곤일척의 싸움에서 양보와 타협으로 뭔가를 도출해낼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미국 생활을 오래 한 김경재 민주당 의원은 그날 밤 “언빌리버블”(unbelievable)을 계속 외쳐댔다.
왜 그랬는지는 굳이 따져보고 싶지 않다. 누군가의 “두 사람이 젊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말만이 감각적으로 와닿는다.
전격적으로 합의를 한 덕에 후보단일화가 2주 만에 다시 표지이야기로 정해졌다. 다시 주말을 반납해야 했다.
그래도 이런 일은 계속해서 일어나면 좋겠다. 하나 주고 하나 받고, 주판알 튕겨보고, 뻔히 들여다보이는 잔머리 굴리는 정치가 아니라, 파격과 비약이 있는 정치. 설사 다음주 또 표지이야기로 채택돼 고달픔이 이어진다 해도 말이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