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와 함께 ] 2002년11월13일 제434호 

사형은 피해자를 보호하는가

432호 표지이야기, 그 뒤

‘대선이 두려운 사형수’에서 2가지 이야기를 미처 다루지 못했다.

먼저 사형제도가 인류 역사에서 보편적인 현상인가라는 문제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18세기 중엽까지는 사형제도를 당연시했다.

동서양이나 농경사회인 나라 형편에서 범죄자들을 감옥에 오래 가둬둘 만한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근대 이전의 국가에서는 범죄자들을 수용할 시설과 그에 필요한 물적 장비와 감시·감독할 인력이 없었다. 지금처럼 교통과 통신이 발전하지 않아 범죄자들이 멀리 도망치면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도망간 범인은 돌아와 다시 범죄를 저지르거나 신고한 사람과 사건 관련자들을 해코지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죄를 지으면 본인뿐만 아니라 친인척까지 처벌하는 연좌제를 당연시했다.

유럽은 19세기 들어 근대국가 채비를 갖추고 산업혁명으로 인해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범죄자들을 굳이 죽이지 않고 감옥에 오랫동안 가둘 수 있는 제도를 운영할 수 있게 됐다. 이후 유럽에서는 사형제도 폐지 논의가 본격화됐고 사형제도 폐지 국가가 늘었다. 영국은 지난해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 유럽인권협약의 서명국가임을 강조하며 만약 영국군이 빈 라덴을 체포하면 미국에서 재판받도록 그의 신병을 미국에 인도하겠지만, 미국이 그에게 사형 집행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때만 인도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다음 문제는 피해자 보호를 위해 사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피해자 보호를 위해서는 피해자와 그 가족을 위해 가해자와 국가에서 정신적·물리적 지원의 노력을 하는 게 중요하다. 따져보면 가해자를 사형한다고 피해자에게 돌아오는 실제 이익은 감정적 보상을 빼면 거의 없다. 사형제도 폐지운동을 펴는 단체들이 피해자를 위한 활동을 하면 한층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영화 <데드맨 워킹>의 주인공 헬렌 프리진 수녀는 사형제도 폐지운동을 펴면서 피해자 가족을 돕는 단체인 ‘서바이브’도 세워 활동하고 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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