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와 함께 ] 2002년10월30일 제432호 

430호를 보고

한총련 표지를 보고 놀라다

이번 주 <한겨레 21>은 표지부터 나에게 놀라움을 안겨줬다. ‘이적단체’인 한총련을 표지에 커다랗게 써놓은 것, 한총련에 대해 적잖은 분량을 할애한 글. 이것들을 자연스레 받아여야지만 낯설게 느껴지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한겨레21>이 말하는 한총련 이야기는 <한겨레21>에 한층 애정을 가지게 해줬다. 더욱이 내가 다니는 학교 수배자들의 이야기가 많은지라 한층 더 와 닿았고 같은 20대로서, 같은 대학생으로서 그들이 겪어야 하는 아픔에 무척 가슴이 아팠다. 한총련은 이미 그 자체의 의미보다 정부와 그릇된 언론이 덧칠해놓은 편견 때문에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한총련이 우리 사회에서 기여해온 많은 긍정적인 부분들은 얘기하지 않은 채 법적인 근거도 충분치 않으면서 ‘이적단체라 부르고 대의원들을 수배자로 규정짓는 우리 사회의 민주화 정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수술해야 할 정도로 아프더라도, 가족상을 당하더라도 수배자기 때문에 차마 갈 수 없는 현실, 이러한 인간의 기본적 생활마저 박탈해버리는 상황에 자연스레 한숨이 새어나온다. 이런 뜻에서 이런 기사를 통해서나마 한총련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제시해주고, 그들이 놓인 상황을 전해줘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한겨레 21>이라도 나서서 한총련을 비롯해 국가가 차마 인정하지 않지만 우리에게는 참으로 소중한 단체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알려주길 부탁한다.

김장효숙

프리챌의 오만

이번호 경제면의 “‘돈 내’와 ‘못 내’의 사이버 혈전”에 대해 의견이 있어서 글을 씁니다. 저 역시 프리챌에서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고, 또한 <한겨레21>을 열독하는 독자라 이번 기사를 관심있게 보았습니다. 하지만 실망이더군요. 문제의 본질을 집어내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예,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돈’이란 것은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돈이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번 프리챌 커뮤니티 유료화 문제 역시 유료화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기업의 일방적 횡포’에 눈을 맞춰보자는 것입니다. 프리챌은 사용자와 아무런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커뮤니티 유료화 계획을 발표하고 실행했습니다. 비록 유예기간을 두긴 했지만 단지 ‘시간 줄 테니 나가거나 돈 내라’ 였지 아무런 대책은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자료의 백업을 요구했지만 프리챌은 그것조차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전 넷츠고가 일방적으로 문을 닫으려 한 사건과 <한겨레> 디비딕이 일방적으로 회원 약관을 변경하려 한 시도 역시 이번 사건과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이버 시대에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기업이라면 구시대적 사고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정신으로 기업정신의 기반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인터넷 기업을 운영하기 위해선 수익모델이 중요하다는 점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수익모델에 대해, 유료화에 대해 네티즌들은 무조건 반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타당한 논리에 의해, 정당한 방법에 의해, 충분한 대화에 의해 수익모델을 찾아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기업보다 이런한 생각에 더욱 진보적이라 생각한 인터넷 회사에서 이러한 모습을 보여줄 때마다 심한 배신감을 느끼며, 한편으론 연민이 느껴집니다. 프리챌은 공급자의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것입니다.

감순구/ 서울시 송파구 가락동

오래된 <한겨레21>을 버리며

어제 굳은 맘을 먹고 그 동안 몇번의 이사를 다니면서도 버리지 않은 철 지난 <한겨레21>을 버렸습니다. 1994년부터 한권도 버리지 않고 모아둔 것인데 도저히 집이 좁아 둘 데가 없고 이제는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1999년 것까지 버렸어요. <씨네21>까지 같이 보기 때문에 우리집 책장에서 늘 상당한 공간을 차지했는데 버리려니 아쉽더군요. 저희집 10살짜리 큰애가 가장 즐겨보는 만화가 <한겨레21>의 시사SF와 <씨네21>의 정훈이 만화입니다. 가끔 <한겨레21>을 보고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해대서 곤란할 때가 있지만, 아이에게 사회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심어준다는 자부심을 갖고 계속 보고 있습니다. 1998년도 <한겨레21> 가운데 그런 표지 제목이 있었어요. 김대중의 혁명… 그러다가 또 이런 제목도 눈에 띄더군요. 김대중 대 노동자…. 참 감회가 새롭더군요. 김대중 정권이 출범했을 때 저도 참 기대가 높았는데 이렇게 민주당이 찢어지는 현실을 보니깐 가슴이 너무 답답하더군요. 여하튼 <한겨레21>은 이미 창간 초기부터 지금 이슈가 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꾸준히 제기해왔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하고 나니깐 <한겨레21>에 대한 애정이 새롭게 생기는 것 같아요. 이제 민주당에는 별 기대를 못하겠는데 민노당에 대한 기사 좀 많이 실어주면 안 되나요 우리나라에도 언제쯤 진정한 좌파 정권이 나타날 수 있을지…. 계속 분투 바랍니다.

하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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