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와 함께 ] 2002년10월23일 제431호 

평화와 여성의 구실

429호 표지이야기, 그 뒤

그들의 ‘지독한’ 봉건적 여성관에 깜짝깜짝 놀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와 남북장관급회담, 민간교류 등을 취재할 때 북쪽 기자들과 보장성원(지원인력) 등을 만날 기회가 몇번 있었다. 북쪽 사람들은 입으론 ‘공화국에서 여성은 봉건적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 세상의 절반으로 당당히 서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직접 만나본 북쪽 남성들은 적어도 여성문제에 대한 인식은 남쪽보다 휠씬 고루했다.

429호 표지기사 ‘조선녀자’에 대해 비판이 있었다.

“이른바 진보적이고 대안적이라는 한겨레가 이번 ‘조선녀자’ 기사에서 여성문제에 대해서만큼은 기존 보수언론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오히려 그보다 한발 더 나아간 가부장성을 드러냈다.”

이런 비판을 존중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털어놓자면 이런 비판은 어느 정도 예상했다. 기획과 취재, 기사 작성 단계 때마다 ‘북쪽 응원단을 어떻게 봐야 하느냐’는 고민이 쇠망치처럼 뒷머리를 때렸다.

하지만 남쪽의 북쪽에 대한 증오와 불신의 응어리, 한반도를 먹구름처럼 휘감고 있는 갈등과 폭력의 구조, (핵개발 시인으로 새삼 확인된) 한반도의 불안한 현실에 주목했다. 한 독자의 의견으로 변명을 대신한다.

“북한 응원단이 예쁜 건 그들의 외모가 정말로 출중해서가 아니다. 분단 이후 증오 가득한 얼굴, 전투적이 목소리의 북한 방송의 아나운서의 삭막한 모습이 아닌 긴 세월 벽에 의해 만나지 못했던, 그리하여 더욱 그리웠던 진정한 형제의 웃는, 밝은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앞으로 관심 있는 분들이 평화와 여성의 구실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계속했으면 좋겠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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