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와 함께 ] 2002년09월18일 제427호 

425호를 보고

이주일씨가 남긴 것

나는 그를 잘 알지 못한다. 어린 시절, 못생긴 얼굴에 수지 큐를 부르며 엉덩이춤을 추던 우스꽝스런 모습이 기억의 전부다. 내 아버님보다 나이 많은 그를 보고 “야, 이주일이다” 하며 손뼉을 치며 깔깔대는, 그저 우스운 존재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금, 우리는 그를 광대가 아닌 황제라고 부른다. 유치하다고 저속하다고 손가락질 받던 못생긴 광대는 죽어서는 온 국민의 애도와 그리움을 받는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사실 그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파란만장한 삶만큼이나 많은 결점과 실패를 안아온 평범한 서민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세상 누구보다 많은 웃음을 우리에게 주었다. 아무도 그를 쳐다보지 않는 설움의 순간에도 “뭔가 보여주겠다”던 약속을 실천에 옮겼고, 모두가 스스로의 우월함을 과시하는 이 사회에서 “못생겨서 죄송하다”며 우리보다 낮은 곳에 엎드렸다. 우리는 그를 손가락질 하고 비웃으면서도 저속한 개그에 환호했고, 못생긴 얼굴을 보며 청량제 같은 시원함을 느꼈다. 그는 우리한테 많은 기쁨의 빚만을 지워준 채 세상을 떠났다. 그가 한때 “코미디 잘 배우고 갑니다”라는 말과 함께 등을 돌린 자리에는 오늘도 코미디의 라이브쇼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약속도 팽개친 채, 모두 자신만의 정의와 욕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주인공들이다. 지금 그들 가운데 이 세상을 떠날 때 한 평범한 희극인 만큼의 존경을 받고 기억될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이준목/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3동

현명한 부모가 되자

이번호 과학 ‘마음의 상처는 평생 간다’를 인상깊게 읽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가정이나 학교에서나 체벌위주로 교육을 하곤 한다. 나 역시 두 아이의 엄마로 아이들이 잘못했을 땐 때론 매를 들어 심하게 체벌한다. 물론 체벌은 자녀가 올바른 사람으로 자라게 하는 데 의미를 두고 있지만 부부 동반 모임 때나 가족모임 때 아이와 함께 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아이 때문에 가끔은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곤 한다. 아이들이 장소 구분을 못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정신없을 정도로 소란을 피우기도 한다. 참다 못한 부모들은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잡아다 앉혀 놓기도 하고, 달래보기도 하고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윽박지르기도 하고, 때론 성질 급한 부모들은 주위사람들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에게 큰 소리로 욕을 퍼부으며 손찌검까지 서슴지 않는다. 부모의 소란스러운 체벌과 아이의 우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잘못한 아이보다 아이에게 무지막지한 체벌을 한 부모의 얼굴을 다시 한번 보게 되고, 나 역시 가끔은 그날의 나의 감정을 실어 아이를 체벌을 했다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해지곤 한다. 문득 내 아이들 눈에는 엄마인 내가 어떤 모습으로 비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좋은 엄마로 아니면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엄마 더 나아가 미운 엄마와 나쁜 엄마로…. 마음의 상처가 평생 간다는 말처럼 미운 엄마, 독선적인 엄마로 아이의 마음에 평생 남아 있지 않기를 바라며 미래를 이끌고 나아갈 우리 아이들이 병든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희망이 없는 암담한 미래가 펼쳐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제라도 이성적인 판단과 사랑으로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며 마음의 상처가 남지 않게 어질고 현명한 부모의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건강한 아이와 건강한 미래를 위해.

오선옥/ 전북 순창군 인계면

돈을 좇는 병원에 대해

제주도에서 사상 최장기 파업을 하고 있는 한라병원 근처에 사는 제주 시민이다. 일련의 병원파업사태를 보면 노사 간의 갈등을 떠나 병원이란 기관의 의미가 궁금해진다. 현실의 병원은 공공성보다는 영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곳인 듯싶다. 한라병원 응급실에 몇번 간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돈부터 내야 진료할 수 있다는 병원 직원들과 급하니 먼저 봐줄 것을 요구하는 환자들 사이의 승강이를 보았다. 최근 응급실에서 성난 환자들의 난동이 증가하는 것도 점점 심해지는 병원의 상업성과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 평범한 시민으로 바라건대 병원이 돈보다는 의료의 질을 좇길 바라고, 의사들도 자신들의 파업과 간호사들의 파업을 따로 재는 이중잣대를 버리면 좋겠다. 그리고 덧붙여 천주교 신자로서 가톨릭계 병원들에게 얘기하고 싶다. 예수는 성직자들에게 아프고 가난한 이들을 돌보라고 하셨지 병원 짓고 돈 벌어 공룡교회를 세우라고는 하지 않으셨다. 다른 병원들은 어떨지 몰라도 가톨릭 병원만큼은 절제·청빈·희생·봉사의 가톨릭 정신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욕심과 물욕으로 가득 찬 더러운 세속의 때를 제발 가톨릭 병원에서만큼은 보고 싶지 않다.

고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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