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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도 사람만이 희망이다? 424호 표지이야기, 그 뒤
“사람만이 희망이다.” 시인 박노해는 오랜 감옥살이를 끝내고 다시 바깥 세상에 나온 뒤 ‘사람’을 화두로 던졌다. 사람을 착취하는 자본에 저항해온 노동시인의 이 메시지에는 1980년대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다. 이데올로기 과잉의 시절을 지배한 ‘이념’에서 ‘사람’으로 박노해의 세계가 옮겨간 것이다. 그런데 아이로니컬하게도 요즘은 자본 안에서도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말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 기업의 미래가 사람한테 달려 있다는 것이다. 옛 사회주의자 박노해와 재벌이 다 같이 사람한테서 희망을 발견했다? 이데올로기가 종언을 고한 21세기적 현상이라 할 수 있을까. 물론 알다시피 본질은 전혀 다르다. 박노해가 사람한테 거는 희망이 보편적 인간을 향한 생명사상 또는 인본주의에 뿌리를 두었다면, 재벌의 시각에서 희망 있는 사람은 ‘큰돈을 벌어다주는’ 극소수 인재일 뿐이다. 모든 인류를 지향하는지 아니면 극소수 핵심인재만을 지향하는지, 그 사이에는 근본적인 이념대립처럼 건널 수 없는 강물이 흐른다. 시인은 기계의 부속품처럼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에 묶인 인간의 해방을 부르짖었다. 반면 기업마다 외치는 ‘사람 위주의 경영’에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빠져 있다. 치열한 경쟁 분위기를 조성하고, 경쟁에서 살아남는 사람만 ‘5% 핵심인재 클럽’에 가입시켜 특우대한다. 그들에게만 애정을 팍팍 쏟고, 대다수 보통직원한테는 찬밥도 아니고 죽든 살든, 회사를 떠나든 말든 무대접으로 일관한다. “(특우대받는)한 사람이 (보통인간)1만명을 먹여살린다.” 이것이 이런 냉혹한 세태를 지배하는 슬로건이다. 제424호 표지이야기 ‘5% 클럽! 당신도 초엘리트?’가 나간 뒤 한 여대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저는 핵심인재개발위원회라는 비공개 학내 동아리 회원인데요, 기업들의 핵심인재전략을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핵심인재개발위원회? 그런 동아리가 다 있나 싶었다. “쉽게 말해 취업대비 모임이에요.” 심각한 취업난의 반영인가, 아니면 대학생들이 자본(기업)보다 더 영악한 것일까.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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