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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독자와 함께 | 등록 2002.08.28(수) 제42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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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괴담] 나, 애인, 전 남편, 그의 애인 (휴가괴담 2)
7월 초 이혼 뒤 처음 사귄 애인과 낙산으로 여행을 떠났다. 민박에 짐을 풀어놓고 저녁을 해먹으려고 장을 보러 갔다. 요즘엔 대형슈퍼가 없는 동네는 없는가 보다. 과일이며, 김치며 생선까지 필요한 건 다 있었다. 우리는 고등어를 조려 먹으려고 어물전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내 품에 안겨 있던 달순이(잡종이지만 앙증맞은 갈색털의 미녀견)가 갑자기 뛰어내리려는 것이 아닌가. 혹시 생선을 보고 장난치려는지 싶어서 채소 파는 쪽으로 피했지만, 여전히 안달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달순이가 바로 ‘그때’ 인 것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얼굴엔 있는 대로 힘을 주고선, 어울리지도 않는 가죽끈과 방울로 목걸이 치장을 하고 빨간 양말까지 신은 퍼그 한 마리가 달순이를 향해 넋놓고 짖고 있었다. 평소 달순이의 취향에 비춰봤을 때, 설마 하는 생각으로 바닥에 달순이를 내려놓았다. 그러나 웬걸. 둘의 눈에 불이 붙었다. 슈퍼 안에서 맞붙기까지는 불과 몇초.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우리 동네 멋진 강아지들에게도 도도하던 달순이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곧이어 “츄야”라고 부르며 퍼그의 주인이 개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 바로 전 남편이었다. 그도 그의 그녀와 함께 많고 많은 장소 가운데서 하필 낙산으로 온 것이었다. 내 개는 그의 개와 교미하고 있고, 나는 애인과 전 남편과 나란히 서서 민망한 광경을 지켜보았다. 전 남편이 분위기 파악을 하고선 개 두 마리를 슈퍼 바깥의 주차장으로 몰고 나갔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내 애인과 그의 그녀는 개들의 성생활을 보호해야 한다며 기다리자고 한다. 그래, 지 개는 짐될 게 없지. 사고 쳐도 암놈인 달순이만 뒤집어쓰니까. 분이 났지만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전 남편과 나는 내가 강아지를 너무 좋아한다는 이유로 불화가 많았다. 가정에 애착이 없는 남편과 살면서 달순이는 내게 큰 위안이었는데, 그것마저도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아이가 없는 것도 강아지 때문이라고 하면서 나와 강아지를 싸잡아 비난한 적도 있다. 이런 그가 강아지를 좋아하는 여자를 사귀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이제는 강아지를 데리고 여행도 다니다니. 심지어는 슈퍼에도 데리고 다니는 애견가가 되다니. 개들의 행사가 끝나고 츄야만큼이나 요란한 목걸이와 발찌를 하고 빨간 샌들을 신은 그의 그녀가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츄야가 잡종견에 관심을 보인 것은 처음이라는 둥, 자기는 개를 가리지 않고 좋아한다는 둥. 그러더니 새끼가 나오면 한 마리 줄 수 있느냐면서 명함까지 주었다. 졸지에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전 남편 애인의 이름과 전화번호까지 알아버렸다. 여행을 다녀온 지 한달 정도가 지났다. 혹시나 싶어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봤더니 임신이라는 것이다. 에구, 어떤 모양의 물건들이 태어나려나. 그리고 새끼 한 마리를 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김경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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