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나를 말릴 수 없다.’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를 람보풍 근육질로 변신시켜 422호 표지에 등장시키고 이런 제목을 달았을 때, 기자는 이렇게 생각했다. ‘어쨌든 유권자의 심판 아닌가. 투표율은 낮았지만 한나라당 후보에게 압도적 지지를 표출했고, 원내과반의 권능을 부여했다. 누구도 이회창 후보를 말릴 수는 없다. 하지만 국가를 경영할 최고권력자를 꿈꾸는 이 후보가 강자에 걸맞은 자기 통제력을 발휘하지 않을까.’

이 후보는 실제로 그동안 상생의 정치, 국정협조, 다수당의 책임을 줄기차게 강조해왔다. 그러나 ‘혹시나’ 하던 기대는 ‘역시나’로 판가름나고 있다. 지난 8월21일 이해찬 의원의 ‘폭탄발언’ 이후 “다수당의 힘과 권능을 보여주자”는 외침이 한나라당을 압도한다. “검찰수사를 위해 이 후보 아들들의 병역비리 의혹을 국회에서 거론해줄 것을 요청받았다”는 이해찬 의원의 발언은 분명 문제가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주장처럼 병역수사가 청와대의 공작임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는 아니다. 그런데 검찰청사로, 청와대로 규탄시위를 다니고, 결국 김정길 법무장관 해임건의안까지 제출했다.

국민을 배려하는 국회나 다수당의 책임을 고뇌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몇몇 한나라당 의원들이 신중론을 제기했지만, 의원회관 한구석에서 사라지는 메아리다. 이유는 간단하다. 국민이 정치에 대한 환멸을 가슴속에 켜켜이 쌓더라도, 그들에게는 올 12월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의 당선이 더 중요하다. 한나라당 안에서 강경론을 대표해온 이재오 의원은 8월22일 의원총회에서 주저없이 외쳤다. “이정연이 군대 갔느니 안 갔느니, 몸무게가 어땠느냐는 이제 괄호 밖이다. 정권연장 음모를 꾸미는 거악의 실체인 청와대를 포격해야 한다. 강경하게 맞서 일거에 국면을 전환하지 않으면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문제가 됐을 때 달려들어 물어뜯어야 한다.” 기회를 잡았을 때 물어뜯자. 다수당의 힘도 한껏 보여주자. 어떻게든 DJ를 걸고넘어지는 게 대선에 유리하다는 속내도 숨어 있다.

한나라당은 행정부로부터 국회의 독립을 외쳐왔다. 그런데 의회권력을 장악한 뒤에도 여전히 최고권력인 대통령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면 끝장이라는 불안감에 빠져 있다. 혹시 의원들 자신이 결국 대통령이 모든 것을 좌우하고, 국회는 그저 행정부의 시녀일 수밖에 없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치 양보없는 권력정치에 벽을 느낀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