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와 함께 ] 2002년08월28일 제424호 

오호 통재라, 서해교전이여

(휴가괴담 4)

우리 두 사람은 미래를 함께하기로 한 사이다. 그날은 우리가 만난 지 100일 되는 날이었다. 그 기간에 얻은 황금 같은 휴가에 우리는 둘만의 밀월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아름다운 미래도 설계하고, 100일 기념의 끈끈하고(?) 뜨거운 백년가약을 맺기로 약속한 꿈에 그리던 1박2일의 바닷가 여행이었다. 나는 이른 아침부터 소풍 가는 아이들처럼 들뜬 채로 쌀을 준비하고 반찬을 준비하고 부산을 떨어댔다. 드디어 떠나는 여행길, 가슴은 마냥 부풀었으니, 세상에 다시 오지 못할 첫 여행이었다. 마침 그날은 대한민국이 터키와의 마지막 결전을 벌이는 날이기도 해서 우리 둘은 나란히 붉은악마 티셔츠를 갖춰입고 한없이 들떠 있었다.

고속도로에 막 진입한 순간이었다. 평소에 꺼놓곤던 그의 휴대폰이 때마침 울렸다. 평소에 받지 않던 전화를 받은 것이 화근이라면 화근이었다. “뭐? 진짜야?”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지만 애써 모른 체하고 나는 이 소중한 여행의 전화 훼방꾼을 사정없이 미워할 준비를 했다. 그러나… 서해교전을 알리는 상황 전보였다. 그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지키는 사람. 한시간 내로 부대에 복귀해야 하는 슬픈 운명의 육군장교였던 것이다. 반 이상 떠난 여행길 고속도로에서 차를 돌려야 하는 슬픈 운명이란. 터키전에서 피날레를 보고 싶어하던 축구 팬들에게 난데없는 교전소식은 더 없는 황당함이요, 애석함이었지만 부푼 기대를 안고 떠난 100일 여행에서 돌아와야 하는 우리에겐 절망 그 자체였다. 부대 복귀하러 돌아가는 발걸음은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그리하여 우리의 100일 휴가는 멀리 날아가고 눈치 없이 서해에서 별안간 도발을 감행한 주범은 나의 평생 원수가 되었다.황금 같은 휴가를 앗아간 일련의 사태는 추억보다는 평생의 한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오호 통재라, 날아가 버린 백년가약의 100일이여, 산산이 부서진 밀월이여! 이보다 더한 괴담이 또 있을쏘냐!

이승은/ 서울시 강북구 번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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