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와 함께 ] 2002년08월21일 제423호 

재판권 반환은 시민의 힘으로

421호 표지이야기, 그 뒤

421호 표지기사 “부시는 사과하라”에는 한홍구의 역사이야기가 함께 실렸다. 한홍구 교수는 원래 쓰려고 한 주제를 미루고 “시급한 사안인 만큼” 한·미 소파협정의 배경과 문제점, 변천 과정을 조목조목 짚는 글을 보내왔다. 기사가 나가고 일주일 뒤 한 교수를 만났다. ‘정리와 평가의 시간’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장장 5시간에 걸쳐 우리는 온갖 세상잡사를 얘기했는데, 헤어진 다음 한 교수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어, 김 기자, 지금 용산을 지나고 있는데 여기 전경들이 쫙 깔렸어. 근데 이상하지 않아? 왜 우리나라를 지킨다는 미군을 우리의 전투경찰이 또 지켜주는지. 어떤 기준과 근거로 그렇게 지켜주는지….” 평소 아무렇지도 않게 보고 지나친 풍경들이 새삼스러워졌다.

‘대중 속으로 들어간 반미’를 다룬 이번 표지기사는 기획과 현장이 행복하게 만난 경우다. 기획은 좋아도 현장이 없거나, 현장은 있는데 기획이 안 잡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반미구호가 정치적 구호가 아닌 대중적·문화적 구호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주제는 연일 벌어지는 대중집회 현장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는 이미 한·미 관계의 변화를 도모할 인력풀이 마련돼 있다. 반미를 몸으로 체감한 수많은 시민운동가·학자·법조인들이 그들이다. 무엇보다 잘못된 일에 당당하게 옐로카드와 레드카드를 내밀 수 있는 시민과 청소년들이 있다. 또한 우리는 문제의 해답을 알고 있다. 불평등한 소파를 뜯어고치고, 주권국가로서 호혜평등한 관계를 맺고, 나아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군축을 도모하는 것까지. 그래서 기사를 쓰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현실은 도무지 바뀔 기미가 없다. 미군 당국은 7월31일 고 신효순·심미순양 사망사건의 가해 미군에 대한 재판관할권을 자신들이 갖겠다고 우리 법무부에 통고했다. 8월21일까지 2차 시한을 앞두고 있으나 우리 정부가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같은 소리를 반복할 확률이 높다. “속시원한 기사였다”는 독자들의 격려가 많았지만, 마음은 영 무겁다. 언제까지 우리는 주한미군 문제, 좁게는 주한미군 범죄에 대해 자위하듯 한풀이를 해야 하는 것일까. 미8군 사령관은 재판관할권 문제는 워싱턴의 결정사항이라고 떠넘겼다. 재판관할권을 되찾기 위해서는 청와대나 여의도가 나서야 하지만 그럴 눈치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청와대나 여의도를 움직이는 것은 시민여론이기 때문이다. 미군으로부터 초콜릿도 껌도 얻어먹지 않고, 존재 그 자체로 주눅들지 않는 젊은 세대가 광장의 주인이 돼간다는 사실이 믿음이 된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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