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독자마당 > 독자와 함께 목록 > 내용   2002년05월22일 제410호
비정규직, 당당한 노동자

408호 표지이야기, 그뒤

제 408호 표지이야기 ‘제3의 계급, 비정규직’이 나간 뒤 며칠 지나지 않아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조합이 기나긴 파업농성을 풀었다. 무려 517일에 걸친 장기투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은 우리나라 비정규직 싸움의 상징이었다. 나아가 그들의 외롭고 오랜 싸움은 비정규직 문제를 넘어 우리 노동운동사에서 한획을 그은 것으로 받아들여질 만하다.

도급업체 취업알선, 위로금 지급…. 차가운 거리를 떠돌며 벌인 장기투쟁치고 남은 성과는 볼품없다. 생각할수록 허탈함만 밀려들 수밖에. 비정규직이라는 벗어던질 수 없는 굴레를 생각하면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성과기도 하다.

물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을 한국노동운동의 지배적 현상이라고 할 순 없다. 이랜드노동조합·호텔롯데노동조합·항공우주산업노조·신호제지노조 등등.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정규직화 쟁취’를 내걸고 비정규직과 어깨를 겯고 싸운 사례는 많다. 그럼에도 대공장 노조 쪽으로 들어가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대립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노동자는 하나다’는 깃발 아래 뭉친 정규직 노동조합마저 ‘조합원들의 정서’ 뒤로 숨고 만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은 근로기준법의 기본정신이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노동은 ‘존재가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서글픈 노동이 되고 만다. 바로 그 존재 형태 때문에 차별받아온 비정규직은 ‘잊힌 존재’였다. 그러나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의 싸움을 통해 비정규직은 자신의 문제를 노동운동의 전면에 드러냈다. 99년부터 자생적으로 일어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과 조직화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이제는 ‘비정규직 노동운동, 여기까지 왔다’는 말까지 서슴없이 나온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지 않고 노동운동의 미래는 없다고 누구나 말한다. 비정규직이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 전체의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 그 한복판에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의 긴 싸움이 있었다. 휘몰아치는 구조조정 속에서 정규직도 언제든 비정규직으로 처지가 뒤바뀔 수 있다. 정규직이 함께 고민하고 싸워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울산에서 만난 정규직 노동자들은 그 누구도 노동자 ‘계급’을 말하지 않았다. 비정규직의 노동이 불쌍하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갈라놓는 자본의 논리도 알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했다. 물론 비정규직도 잘 알고 있었다. 정규직이 조금씩 베풀어주는 식으로는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결코 철폐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당당한 노동자로 서려 했던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의 싸움은 그래서 더욱 빛난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