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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섹션 : 독자와 함께 | 등록 2002.04.03(수) 제40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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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와함께] 돌풍을 예보하기까지 401호 표지이야기, 그 뒤
<한겨레> 정치부에서 <한겨레21>로 옮긴 뒤 쓴 첫 기사였다. 지난 3월13일, 출근은 했으나 막막했다. 무슨 얘기를 쓸까, 머리를 쥐어뜯고 있자니
3월16일로 잡힌 광주경선은 예측불허였다. 일단 결과를 지켜보기로 하고 광주로 향했다. 염주체육관의 열기는 뜨거웠다. 결과가 발표되는 순간 현장의 기자들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돌풍이었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갑자기 머릿속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이튿날 대전경선에서 이인제 고문 쪽에 쏠린 몰표로 노 고문은 2위로 밀려났다. 일순 돌풍이 멎는 듯했다. 표지이야기로 올리는 것도 조금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잇달아 발표된 <문화방송>과 <한국방송>의 여론조사에서 노 고문 지지율은 더욱 높아졌다. 돌풍이 더 드세졌음을 확인한 것이다.
취재하기 위해 만나본 민주당 의원들의 달라진 기류에서도 ‘노무현 돌풍’이 거품만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었다. 광주경선 이후 의원들은 확연히 다른 태도를 보였다. 암묵적으로 ‘이인제 대세론’에 공감하던 여러 의원들이 일제히 노 고문의 본선 경쟁력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 염두에 두던 표지 제목은 ‘솟는 노무현 대안론’정도였다. 광주경선 현장에서 떠오른 제목은 ‘노무현 돌풍’이었다. 편집장과 팀장들이 머리를 맞댄 끝에 나온 최종 표제는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이 제목에 대한 반응이 다양했다. 대학 동창모임에서 만난 한 후배는 “‘?’보다는 ‘!’가 나았을 것”이라고 농담처럼 건넸다. 민주당 내 일부에선 너무 나가지 않았느냐는 반응도 나왔다. 따지고 보면 노무현 돌풍의 함축적인 의미도 결국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글귀에 현실적 가능성을 부여했다는 점이 아닐까.
한사코 거절하는 노 고문의 부인 권양숙씨를 인터뷰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대전까지 따라가 집요하게 설득한 정인환 기자의 끈질김과, 인터뷰를 위해 새벽 4시에 집을 나선 사진팀 김종수 기자의 부지런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인터뷰였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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