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와 함께 ] 2002년04월24일 제406호 

그들은 지금도 방황한다

404호 표지이야기, 그뒤

편집장이 탈북자들을 만나러 중국 현지취재를 가라고 했을 때, 솔직히 내키지 않았다. 1년에 500명 이상의 탈북자들이 잇따라 한국에 입국하고, 모든 언론이 그들의 비참한 삶을 몇 차례씩 보도했다. 더 새롭게 쓸 게 뭐가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더욱이 탈북자들을 돕는 시민·사회단체들 모두가 “엄혹하다”, “다음에 도와주겠다”며 피해갔다.

그러나 중국 현지에서 만난 탈북자들의 삶은 언론이 이미 다뤘기 때문에 시쳇말로 기사가 안 되는 그저그런 이야깃거리가 아니다. 그들은 이방인이다. 아니 중국사회 최하계층이다. 표독스런 몇몇 한국인들이 조선족을 홀대하고, 열등한 인간 취급하며 이용하고 착취하듯, 탈북자들은 악독한 조선족들에게 이용당하고 착취당하고 있었다. 그나마 한국 땅에 발디딘 조선족들은 부당함을 호소할 최소한의 기회라도 있다. 탈북자들은? 딱히 하소연할 곳도 없다. 하늘이 도와 ‘귀한 분’을 만나면 한국행에 필요한 각종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정도의 가능성일 뿐이다. 오히려 그런 불만을 하소연한다면 스스로 탐욕스런 입에 먹잇감으로 들어가겠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탈북자들 상당수는 기자를 한국행을 실현시켜줄 귀한 분으로 인식하며 “길을 알려달라”, “도와달라”고 애원했다. 눈물도 쏟아냈다. 물론 기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딱한 처지를 차마 눈감을 수 없어 약간의 돈을 건네주는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현실을 개선할 수는 없다. 그런 돈을 모아 한국행을 도와줄 누군가를 찾아나서겠지만 십중팔구 쓰디쓴 배신감을 맛볼 게 빤하다. 요즘도 심심찮게 한국에 발을 딛는 탈북자들 대부분은 이런 고난을 뚫고 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매일 오는 별 관심 없는 인간들…. 그 정도 무관심은 괜찮다. 혹시 이제 그만 좀 들어왔으면 하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그들이 쏟아져들어와 우리 사회의 불안요인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지는 않은가? 기자는 가끔 그들을 “북한사회에서도 적응 못하는 쭉정이”로 폄하하며 “왜 우리가 세금을 내가며 그들을 계속 지원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과 마주친다. 그들에게 제발 좀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하면 “강요하지 말라”고 대꾸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 좀더 관대해져야 한다고, 관대해지자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정부가 좀더 적극적으로 탈북자 문제 해결에 나서도록 압박하자고 말하고 싶다. 그때 만난 탈북자들은 지금 이 시간, 넓은 중국 땅 어디쯤에서 구원을 손길을 기다리며 헤매고 있을 테니까. 내가 포장마차에서 술 한잔 기울일 돈으로 한달을 연명하면서, 한국행을 갈망하면서…. 내가 만났던 사람들 중에 이미 중국 공안의 단속에 걸려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동포인 우리가 그들을 외면한다면, 살아서 구천을 떠도는 그들은 과연 어디로 가야 할까?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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