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와 함께 ] 2002년04월17일 제405호 

발전소에 돌아와 보니…

독자편지

며칠 전 휴대폰으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저, 이준상 선생님 되십니까?” “예, 그런데요.” “저는 00은행 00지점의 000입니다. 법원에서 선생님의 급여통장으로 압류가 들어와서 전화드렸습니다.” “뭐라고요? 얼만데요?” “예. 가만 있자… 어, 이상하네. 저…선생님 금액이… 31억2050만원입니다.”

은행으로 달려가 급여통장을 확인해보니 통장에는 ‘-3,120,500,000’이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자릿수라 한참을 세어보았다. 어떤 근거로 어떻게 산출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파업기간 중 회사가 손해배상청구를 하였고 이를 법원에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지난 2월25일, 발전노조는 철도·가스노조와 함께 연대파업을 선언하고, 4월2일 민주노총의 연대총파업 철회까지 38일간의 여행파업이라는 신개념의 산개투쟁을 벌였다. 나는 같은 조에 편성된 동료들과 나의 고향인 경기도 청평을 비롯해서 임진각·서울·이천·마석 등지의 민주열사묘역, 4·19묘지와 해남의 땅끝마을 등 전국을 유랑하며 38일을 보냈다. 남편을 파업현장으로 보낸 가족들은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수많은 집회에서 남편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4월2일 파업철회와 노·정 합의문은 발전조합원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채 서둘러 복귀를 할 수밖에 없었다. 38일이라는 외유를 마치고 돌아온 가정은 그래도 따스했으나, 다시 돌아간 일터에는 계절을 거스르는 찬바람만이 돌고 있었다. 우리는 교화해야 할 범죄자가 되어 있었고, 순화교육 프로그램과 서약서가 우리를 맞이했다. 보직해임, 추가징계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미끼인 서약서는 인간의 기본적인 양심의 자유를 의심하게 했고, 서약서를 강요하는 간부들은 예전의 우리가 보아온 그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 사업소는 120명의 조합원 중에서 16명이 해임되었다. 직책이 없는 평조합원은 나를 포함해 2명이었다. 5600여명의 발전조합원 중 348명이 해임되었고, 추가징계라는 정부와 회사의 압박은 연일 계속되고 있다. 파업은 지금까지의 모든 인간관계를 재편했다. 파업기간 중 사업소 복귀를 강요하던 회사 간부와 파업에 불참한 조합원, 중간에 복귀한 조합원들 간의 골은 깊어질 대고 깊어져 있었다. 만나는 사람마다의 얼굴에선 웃음을 찾아볼 수 없었고, 만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표정이 달라졌다.

발전노동자들은 파업을 하긴 했지만, 발전기를 멈추거나 현장을 점거하지는 않았다. 한순간이라도 전기공급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파업 이전에 회사 간부와 대체인력에게 몇 주간 운전교육을 시켜놓고 업무인계까지 충실히 마치고 파업에 돌입했다. 그런데 정부와 회사는 지금 이성을 잃은 듯하다. 발전노동자와 가족들은 모두들 심각한 정신공황에 빠져 있다. 정부는 우리 발전노동자들이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해고를 감수하면서 간절히 호소한 발전소민영화·해외매각의 부당성에 대해 재삼 숙고하기를 바란다.

이준상/발전노조 여수화력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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