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와 함께 ] 2002년03월12일 제400호 

부자, 특권과 욕망

해병대사무실 벽에 대개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누구나 다 해병대원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대에 자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해병대가 갖는 일종의 특권의식을 엿볼 수 있다.

부자도 마찬가지 아닐까. 누구나 부자를 욕망하지만 부자가 ‘못 된’ 다수를 제치고 부자가 됐다면 그에 따른 특권을 누리고자 하는 ‘또다른 욕망’이 생길 법도 하다. 해병대의 논리처럼.

<한겨레21>이 지난 398호에서 표지이야기로 다룬 ‘돈, 욕망… 부자의 꿈’도 애초 부자의 특권의식에 초점을 맞췄다.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욕망 뒤에 깔린 ‘특권’을 통해 “부자 되세요!”라는 유행어가 갖는 사회경제적 의미를 캐보자는 것이었다. 물론 특권의식은 남들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공동체의식의 배제를 그 특징으로 한다. 누구나 다들 부자가 될 수 있다면(물론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지만), 이미 부자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상당수가 배 아파할 것이다. “여러분, 다들 부자 되세요!”라는 외침은 그런 점에서도 모순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인 셈이다.

한국사회에서 부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 특권과 정확히 맞물려 있었다. 축적한 부의 정당성에 대해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부유층의 소비를 ‘과소비’라고 비아냥거려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쓸 만한 돈이 있어서 소비하는 것인데 무슨 ‘도를 넘친’ 소비냐”며 즉각 항변하는 부자가 있을 법도 한데, 대놓고 그런 말을 하는 부자는 지금까지 거의 없었다. 한국은행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부자의식 설문조사에서 부자가 되면 “사회복지시설에 일정 부분을 기탁하겠다”는 등 ‘사회봉사’를 유난히 강조한 대목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자 되세요”는 2002년 초봄, 한국에서 분명히 하나의 신드롬이다. 이른바 ‘뉴 리치’로 불리는 신흥부자들은 “그래, 나 고급 외제자동차 샀다. 내 돈 주고 내가 알아서 산 건데 무슨 ‘과소비’냐? 욕하기 전에 너희도 부자 되라”고 드러내놓고 부자의 ‘특권’을 옹호하기도 한다. 물론 거대한 돈의 탁류가 흐르는 시대에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기는 더욱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오로지 돈이 부여하는 특권만을 좇는 세상에서 인간의 삶은 팍팍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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