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섹션 : 독자와 함께 등록 2002.02.19(화) 제397호

[독자와 함께] 희망은 아직 유효하다

‘대통령 처조카 이형택 전 예보공사 전무, 보물선 사업 지분 15% 보장 약속받아.’

<한겨레21> 기자들은 차정일 특검팀의 수사결과가 보도된 지난 1월21일 대통령 가족과 친인척 문제를 표지로 올리기로 전격 결정했다. 숱한 의혹을 낳아온 대통령 친인척의 이권개입이 처음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시작에 불과할 것이라는 게 우리의 판단이었다. 아니라 다를까, 며칠 지나지 않아 이형택씨가 청와대 이기호 경제수석을 통해 보물선 사업에 국정원과 군을 동원하려 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정확한 직감은 기자의 직업적 직감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직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본능적 직감이 아니라, 우리의 불행한 현대사를 경험하면서 얻은 학습효과일 뿐이었다. 자료를 뒤져보니 역시 대한민국 건국 이래 어느 한순간도 최고 권력자 가족과 친인척의 비리로 얼룩지지 않은 시절이 없었다. 비리 주역들에 대한 철저한 단죄가 이뤄진 적이 한번도 없다는 사실만이 도돌이표를 오가는 우리 역사의 운동법칙을 새삼스럽게 시사했다.

취재를 하면 할수록 몇 가지 대증요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해져갔고, 그럴수록 절망감도 깊어갔다. 기껏 가장 가까이에서 원인을 찾았다는 게 ‘정치구조 개혁’이라는 거대 화두였다. 지금처럼 옥석 가리지 않고 사람을 끌어모아야만 정치를 할 수 있는 현실은 권력자 주변의 비리를 키우는 거름이었다. 조금 멀리서 찾았다는 게 ‘각하 아드님의 뜻’이 ‘대통령님 아드님의 뜻’으로 바뀌어도 여전히 관철되는 핏줄 중심의 봉건적인 사회가 비리를 배양하는 환경이라는 공자님 말씀이었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지난 정권의 비리에 비하면 현 정권의 비리는 귀엽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현 정권에서는 작은 것 하나도 은폐가 불가능하다”고 설을 풀었다. ‘귀여운 비리’라는 게 있을 수 없고, ‘비리 들추기’가 민주화의 척도라고 말하는 것도 낯간지러운 노릇이다. 그렇다고 희망을 아주 접을 일은 아니다. 지금 무더기로 불거지고 있는 비리를 교훈삼아 오는 선거에서 더 나은 권력을 세울 수만 있다면, 희망은 아직 유효하다. 결국 희망은 국민 손에 달린 셈이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http://www.hani.co.kr/section-021038000/2002/02/02103800020020219039702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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