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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도시의 삶을 찾아서 짐작했겠지만, 제 396호 표지이야기 ‘당신의 고향이 분열하고 있다’는 설을 맞이해 기획된 기사다. 나와 신윤동욱 기자는 ‘한국에서 지방 중소도시에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안고 김천과 정읍으로 급파됐다. 열차에 탔을 때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정리된 기획안도 없었다. 말 그대로 김천역과 정읍역에 각각 ‘떨어진’ 우리는 막막함만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걸까?’ 김천으로 간 신윤동욱 기자는 그래도 자기 고향이니까 기댈 사람도 있을 텐데 내게 정읍은 그야말로 낯설고 물 선 ‘객지’였다. 무작정 정읍시청으로 향한 나는 별 수확을 못 건지고 거리를 쏘다니기 시작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을 붙잡기도 하고 바삐 길가는 사람을 막고 물었다. “정읍은 너무 좁고 심심해요.” “그래도 내가 사는 고향인데 푸근하고 좋지 뭐.” 정읍에 산다는 것에 대한 대답은 십중팔구 이 둘 중 하나였다. 그러길 몇번이나 했을까. ‘아, 이런 식으로는 죽도 밥도 안 되겠다.’ 속으로 생각한 나는 여관에 짐을 풀고 밤늦게 김천쪽에 전화를 걸었다. “선배, 이쪽도 똑 같아요. 결코 쉽지 않은 취재 같은데…걱정입니다.” 전화선 저쪽의 신윤동욱 기자도 딱히 잡히는 게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전화 통화가 길어질수록 정읍이나 김천이나 “사람 사는 세상이 다 그렇지 뭐” 하는 수준으로 둘의 대화는 추락하고 있었다. 물론 이래서는 기사화가 불가능하다는 것도 둘 다 잘 알고 있었다. 다음날부터 우리의 취재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길거리며 구멍가게, 식당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김천과 정읍의 삶을 ‘느끼는’ 수밖에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그걸 느끼려면 되도록이면 많은 정읍 사람들을 만나야 했다. 노동자, 교사, 공무원, 학생, 변호사, 주부, 가게 주인…. 수많은 정읍 사람들과의 인터뷰 속에 꿈이라거나 좌절같은 평범한 일상과 삶의 숨결이 있었고, 무언가 중소도시가 유지되는 나름의 질서도 있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났을까. 어렴풋하게 정읍 사람들의 미세한 삶의 무늬가 느낌으로 다가왔다. ‘더 큰 도시로의 탈출 욕망과 고향이 주는 푸근함이 서로 뒤엉키고 있다. 그런데 탈출은 적극적인 의지인 반면 푸근함은 여러 사정으로 못 떠나는 현실에 대한 자기 위안같은 것이다.’ 김천이 굴러가는 내적 논리를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신윤동욱 기자도 나와 비슷한 결론에 도달하고 있었다. 왜 하필 김천과 정읍을 꼽았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겨레21>과 어떤 인연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두 도시는 인구 15만명 안팎에다 (탄광도시로서의)태백같은 뚜렷한 지역적 특징을 갖고 있지 않아 한국 중소도시로서의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다고 판단해서였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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