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섹션 : 독자와 함께 | 등록 2001.05.02(수) 제357호 |
[독자와함께] 한결같은 남자, 한결같은 잡지 이주의 독자/ 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유임현 홍보부장
작은 광고대행사를 경영하고 있던 유임현(36)씨는 지난해 자신의 일생을 건 도박을 할 것인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의 화두는 평소 관심이 많았던 시민운동에 투신하는 것이다. 이런 욕망에 불을 붙인 것은 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시민연대)의 작은 책자. “여태까지 나는 역사교육을 잘못 받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이 시민단체를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문제는 생계였다. 적은 보수로 아내와 곧 초등학교에 입학할 아들을 책임질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결단을 촉구한 것은 바로 아내와 아들이었다. 살림을 줄이더라도 하고 싶은 일은 해야 한다며 유씨를 격려한 아내, “아버지가 남들처럼 많은 걸 못해줘도 전 상관없어요”라고 당차게 말하는 아들 때문에 망설임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행복하다. 며칠 전 “<한겨레21>을 사랑하는 독자”라고 자신을 밝힌 시민연대의 한 회원이 독자면 담당자에게 두툼한 소포를 보내왔다. 그 소포에는 시민연대의 활동과 유씨에 대한 자료가 가득 들어 있었다. 소포를 받자마자 유씨에게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요청했고, 난감해하는 그에게 “회원의 정성을 봐서라도 인터뷰에 응해주셔야 한다”고 떼를 썼다. 서울 효제동의 단출한 사무실에서 만난 유씨는 생글생글한 미소가 인상적인 ‘아저씨’였다. <한겨레21>을 구독하기 시작한 지는 5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가방 속에 항상 잡지를 넣고 다니며 시간 날 때마다 읽는 열성독자다. 그가 말하는 <한겨레21>의 장점은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 ‘한결같음’이다. 언제나 약자 편에 서서 자신만의 색깔을 고집하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불만이 있다면 다른 주간지에 비해 디자인이 너무 평이하다는 점이다. 편하게는 읽을 수 있지만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참신한 디자인이 없이 모든 기사가 천편일률적으로 배치되어 조금 늘어지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그가 일하고 있는 시민연대는 상고사부터 시작해 식민사관이 왜곡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역사강좌를 운영하는 데 활동의 중점을 두고 있다. 또한 우리 역사교과서에서 일제 시절 친일 역사학자에 의해 잘못 기술된 사실들을 바로잡기 위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그는 “대중강좌를 수십번 여는 것보다 교과서의 한줄이 바뀌는 효과가 크죠”라며 교과서 수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최근에는 교과서 왜곡에 항의하는 대중집회를 여러 차례 열기도 했다. 학생운동의 ‘전력’이 있어서 집회를 조직하는 데 별로 어려움이 없지만, 문제는 시민들의 ‘이상한’ 반응이다. 시민연대가 주장하는 바에 호의를 보이면서도 직접 행동에 나서기는 꺼려한다. 심지어는 서명에 동참했다가 나중에 자기 이름을 삭제해 달라는 시민도 있다고 한다. “이 일을 하면서 외로움을 느낄 때가 많아요. 하지만 저를 이주의 독자로 추천해준 열성회원 같은 분들을 볼 때면 그런 외로움은 단숨에 사라지죠.”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길에 자신의 의지로 뛰어든 그, 행복할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은데 언제나 웃음이 떠나지 않는 그. 유임현씨가 <한겨레21>에 당부하는 말은 너무나 소박했다. “지금까지 해온 만큼만 앞으로도 잘해주세요.”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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