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와 함께 ] 2001년05월29일 제361호 

우아한 은퇴는 불가능한가

지금의 30∼40대 직장인들의 노후문제를 다룬 359호 표지이야기는 단지 문제제기를 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길잡이 구실을 하고 싶었다.

우리나라는 빠르게 고령화사회로 접어들어 2022년쯤이면 65살 이상 노인인구의 비중이 14%를 넘어설 전망이다. 바로 지금의 30∼40대가 노인이 될 즈음이다. 이때부터 연령계층별로는 선진국형 인구분포가 고착화된다. 이런 인구분포를 가진 선진국들은 우리 시각에서 보기에는 ‘노인천국’이다. 왕성한 소비력을 과시해 노인만을 대상으로 한 ‘실버산업’이 번성할 정도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앞으로 20여년 뒤 노인들이 소비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 요즘 수도권 일부지역에서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는 ‘화려한 실버타운’도 선진형 고령시대의 신호탄일까.

이런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려고 우선 30∼40대 가장의 벌이로 생활을 하고 있는 도시 중산층 가정의 가계부를 들춰봤다. 현재 중산층 가정의 부부가 20여년 뒤 우아한 노후생활을 즐길 수 있을지 계산해보면, 불행하게도 대부분 노후대책이 부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의 30∼40대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경우에도 가계수지를 맞추기가 빠듯한 형편이다. 벌이가 비교적 넉넉한 가정도 저축의 1차목적이 집 장만이고, 그 다음은 자녀교육비 마련이다. 자녀들을 출가시킨 다음의 노후대책을 위해 저축할 만큼 여유를 가진 가정은 드물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중산층 가정은 가장의 노후를 생각하면 갑갑하기 그지없는 실정인 셈이다. 게다가 실업, 고용불안, 실질소득 감소 등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체제에서 피해를 본 계층들은 노후대책이 더욱 막막하다.

과거에도 30∼40대 연령층은 노후대책이 없었다. 모아둔 재산이 없어도 그럭저럭 여생을 보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전통적인 경로효친(敬老孝親) 사상과 이에 기초한 가족제도가 있었다. 따라서 자녀교육에 온 정성을 쏟으면 그게 바로 확실한 노후대책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30∼40대에 ‘가족제도를 통한 노인부양’은 역사적 유물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각자가 알아서 치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우아한 은퇴’는 보장되지 않는다. 그래서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얻어본 결과, 연금보험과 절세형 장기저축, 어느 정도 생계비는 건질 수 있는 소자본창업 등 몇 가지 조언들이 나왔다. 하지만 이마저도 범용성 있는 대책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게 독자들이 반응이었다. 당장 먹고살기도 어려운 판에 그만큼의 여유자금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또 저성장에 따른 저금리 추이 때문에 웬만큼 저축을 해봤자 노후생활자금 확보가 불가능하다는 독자들의 지적도 있었다. “적은 월급이지만 덜 쓰고, 덜 입어서 좀더 많이 저축을 하면 좀더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현실은 저축해봐야 물가상승률만큼 이자조차 받을 수 없다. 소시민들에게는 희망이 없는 시대이다.”

결국 359호 표지이야기는 ‘우아한 은퇴’가 어렵다는 문제제기만 했을 뿐 해법을 찾아주지는 못했다. 독자들은 ‘오히려 더욱 답답하기만 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앞으로 <한겨레21>은 노인복지문제를 국가에서 책임지도록 촉구해나갈 방침이다.

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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