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와 함께 ] 2001년05월22일 제360호 

죽음, 이제 떠오른 사회적 의제

358호 표지이야기 ‘죽을 권리’는 문제제기 성격이 짙은 주제였다. 처음에는 막연히 자살과 안락사를 묶어 인간의 죽을 권리를 다뤄보자는 수준의 문제의식이었다. 하지만 취재를 진행할수록 갈피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사실 “죽을 권리를 달라”고 외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쉽지 않았을뿐더러 죽을 권리를 옹호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인의협의 한 의사는 “죽을 권리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살 권리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죽을 권리’를 운운하는 게 사치일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충고했다.

문제설정을 좀 바꾸기로 했다. 편안하게 죽을 권리를 보장하지 못하는 ‘사회’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 것이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도 책의 일부이듯 죽음도 삶의 일부”라는 미디어평론가 변정수씨의 말처럼 죽음은 삶의 질과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어떤 사람들의 삶을 방치하는 것처럼 ‘편안하게 죽을 권리’ 또한 방치하고 있었다. 편견 속에서 죽어가는 AIDS환자들의 죽음과 독거노인들의 방치된 죽음이 대표적이다.

기획과 취재과정의 어려움은 컸지만 많은 것을 배운 취재였다. 무엇보다 앙상한 몸피로 호스피스 병동에 누워 있는 AIDS환자와 말기 암환자를 보면서 스스로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죽음은 항상 가까이 있는데 너무 잊고 살아온 것이다. 나부터 죽음에 대한 극도의 공포를 넘어설 때 죽음의 문제를 제대로 볼 수 있을 듯했다.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어야 죽을 권리도 하나의 사회적 의제로 토론 가능하다.

독자들의 반응은 두 갈래로 나뉘는 듯하다. “좋은 문제제기였다”며 주제의식을 높이 사는 쪽과 “깊이가 부족했다”, “사례의 나열에 그쳤다”는 비판적이 시각이 그것이다. 변명을 하나 덧붙이자면 죽음, 나아가 죽을 권리에 대해 자문을 구할 전문가가 이 사회에 많지 않다는 것이다. 도덕주의적 잣대를 내세우며 외면하는 사이, 인간 최후의 권리인 죽을 권리는 날로 삶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죽을 권리는 이제 막 떠오른, 그러나 끊임없이 불거져 나올 의제다. 사회 전체가 머리를 맞대고 심도있는 논의를 해야 할 시점이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죽을 권리’를 읽고 나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특히 자살사이트에 대해 무조건 나쁘게 생각해왔던 내 시각이 조금은 바뀌기도 했다.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살아난 AIDS환자의 사연도 마음이 아팠다. 이웃의 삶을 돌아보는 것처럼 나와 이웃의 죽음도 가끔 돌아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성이 산만하다는 느낌이 없진 않았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한 기사였다.

추진욱/ wnsdnr@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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