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와함께] 333호를 읽고…

큰 키 강요하는 사회적 맥락을

언제부터인지 키라는 외양적인 기준은 한 사람의 첫인상만을 결정하는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단순히 키가 크다는 이유로 혹은 키가 작다는 이유로 우리는 이유없는 자신감과 열등감을 느끼고 있고, 이런 개인적인 감정의 수준을 넘어 키는 사회생활,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예로, 기업체에서 원하는 기준이 아니면 취업의 기회마저 박탈당합니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정체를 알 수 없는 키에 대한 기준은 ‘죄없는 죄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 당연시되는 “키는 클수록 좋다”는 생각은 예전에는 없던 키에 대한 콤플렉스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키가 큰 것이 당연하다는 기형적 표준을 만들고, 외모의 다양성마저 획일화하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키가 늘신한 팔등신 미인을 미의 기준으로 받아들인 것처럼 말입니다. 큰 키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은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맥락에서 짚어보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허지영/ 경기도 의정부시 신곡2동

축구 부진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나는 열렬한 축구팬도 아니며, 축구에 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333호 스포츠 ‘한국축구 승장은 어디에…’를 읽고 이건 아니다 싶어 펜을 들었다.

이 글의 요지는 자칫 ‘국내에는 더이상 기용할 감독이 없으니 외국으로 눈을 돌려 그들의 선진 기술을 배워보자’는 입장으로 오해될 소지가 많다. 외국인 감독 기용의 찬반을 논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흔히 우리나라 스포츠를 문제삼을 때, 승리 위주의 엘리트주의 정책을 언급하곤 한다. 기초적인, 저변의 힘을 키우는 대신 눈에 보이는 결과에만 집착하는 단기적인 안목으로 시스템을 운영한다는 것이다. 이 기사에서도 이러한 생각은 드러난다. 감독이 어떤 스타일이건 이기고 나면 덕장이고 지장이고 용장이 된다는, 실패를 거두면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그런 생각 말이다. 우리나라 감독들에게 그럴 만한 기회를 얼마나 주고 있는지 묻고 싶다. 장기적인 계획과 선수 발전은 훌륭한 감독 기용에 덧붙여지는 부수적인 요소가 아니라 핵심문제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지적해야 할 것은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않은 채 감독경질로만 실패를 무마하는 현실이 아닐까 한다.

은유리/ 인천시 남구 용현동

그래도 열심히 살려 합니다

내팽개쳐지고 있는 회사원들을 보면서 참담함을 금치 못합니다. 이 정권에 기대를 하고 표를 주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실업, 부도, 실망입니다. 생활은 갈수록 어려워지기만 하고요. 변해야 산다는 것은 알지만 속도감에 뒤처져가는 느낌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자고 나 자신에게 되뇌곤 합니다. 조금은 힘들지만, 곧 태어날 아이가 있고, 무뚝뚝하긴 하나 날 사랑하는 아내가 있기에 일자리가 없으면 막노동이라도 길거리 리어카 장사라도 할까 합니다. 저 자신은 떳떳하고, 그 잘난 9시 뉴스에 나오는 추악한 인간들보단 나은 것 같은 생각이 드니까요.

유용상/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바로잡습니다

제331호 ‘철강신화 다시 이룰 수 있을까’(88∼89쪽) 기사 중 ‘연합철강이 부도를 내고 국제그룹으로 넘어가기 2년 전’을 ‘연합철강이 국제그룹으로 넘어가기 2년 전’으로 바로잡습니다. 연합철강 부도는 국제그룹에 인수되기 전이 아니라 인수된 뒤의 일이었습니다.

제333호 스포츠 기사 중 ‘아르헨티나에 한골도 뽑지 못하고 0-2로 졌으나’는 ‘1-3’으로 바로잡습니다.

제332호 ‘‘맹 검사’는 감옥 안에서 싸운다’는 기사와 관련해 강간죄는 맹광영씨의 죄명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