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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와함께] 334호를 일고… 한통련의 명예회복과 귀국보장을!
<한겨레21> 제333호 ‘쾌도난담’에 입국을 거부당하다가 ‘소명절차’ 없이 29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 재일 인권운동가 임병택씨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임병택씨의 귀국이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다는 이유로 해외인사들에게 가해진 부당한 처우를 바로잡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기사의 ‘해외반체제 인사들이 소명절차 없이 들어올 수 있게 됨으로써’는 사실과 다르다. 임병택씨의 경우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 소속인 ‘재일한국청년동맹’에서 일하다가 나이가 들어 탈퇴했기에 입국이 가능했다. 총련 인사들이 오가는 지금도 한국국적의 한통련 인사들은 양심에 반하는 ‘준법서약서’ 작성 등 소명절차를 거치지 않고는 단 한명도 입국할 수 없다. 한통련은 과거 해외민주화운동과 김대중 대통령을 탄압하기 위한 구실을 찾던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반국가단체’가 되었다. 이제 한통련의 훼손된 명예를 회복시키고 본국 왕래 보장을 통해 야만과 폭력으로 얼룩진 과거의 정치사를 청산하고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노력해온 동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 한다. 유한범/ 한통련 명예회복과 귀국보장을 위한 대책위 준비모임 사무국장
구스마오, 한편의 드라마
지금은 동티모르가 독립국가로 인정이 되었지만 독립이 있기까지 그들의 처절한 투쟁은 그야말로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한편의 드라마와 같았다. 동티모르 독립지도자 사나나 구스마오의 자전적 수기를 읽으면서 그의 불타는 투쟁의지와 동티모르 사람들의 독립의지가 오버랩되면서 다시금 마음이 숙연해짐을 느꼈다. 사실 영웅이라는 것은 시대가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시대를 만들어가는 것도 영웅의 몫이 아닐까 생각한다(그렇지만 박정희는 절대 영웅이 아니며 영웅시되어서도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사나나 구스마오도 시대의 덕(?)을 크게 본 사람일지 모르지만, 최소한 그가 동티모르 사람들과 함께 걸어온 혁명의 길은 분명히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내고자 한 피나는 노력의 산물이었다고 생각한다. 구스마오의 글을 읽으면서 내 주위의 사소한 잘못을 방기하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배운다. 김희곤/ 강원도 원주시 가현동
무명가수의 열정이 부럽기도
가끔 주말에 아이를 시댁에 맡겨두곤 남편이랑 서울 근교로 드라이브를 간다. 얼마 전에 양평에 갔는데 정말이지 라이브 카페들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날이 어둑어둑해질 때쯤 간단히 맥주나 한잔 하려고 카페에 들어갔는데 마침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곳에는 중장년층들이 꽤 많이 자리잡고 있었고 다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술을 마시고 있을 뿐, 아무도 가수의 노래에 귀기울지 않았다. 노래가 끝나고 남편과 박수를 친 나는 정말이지 무안할 지경이었다. 아무도 노래가 언제 끝났는지 관심도 없었던 것이다. 가수가 불쌍하기까지 했다. 그가 무대에서 내려올 때까지 남편과 나만 박수를 쳤을 것이다. 정말 ‘불러도 대답없는 노래’였다. ‘대박’을 꿈꾸지만 현실은 그저 팍팍하기만 한 그네들의 삶. 그래도 그들이 간직하고 있는 열정이 부럽다. 언젠가는 그 열정이 빛을 보게 되길 기대한다. 이경희/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어느 때보다 간절한 전태일
1970년 11월13일은 스물두살의 청년 전태일이 청계천 평화시장 한가운데서 분신자살한 날이다. 30년이란 세월을 훌쩍 넘은 2000년 11월13일은 살아 있었으면 53살로, 어느 평범한 집의 가장이 되었을 전태일이지만 그는 우리곁에 여전히 스물두살의 앳된 청년으로 남아 있다. 제2의 경제위기가 코앞에 다가오고, 노동자들은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의 단두대로 향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어느 때보다 전태일을 간절히 불러보고 싶다. 지난주 ‘창’과 ‘쾌도난담’을 보면서 여전히 모순투성이인 현실이 참 답답했다. 지금 우리 상황은 속된 말로 자기 집에 자기가 불질러놓고, 애꿎은 사람에게 어서 불끄라고 강요하는 꼴과 같다. 어느 집회에서 목청높여 <단결투쟁가>를 부르던 노동자들이 제2의 전태일이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손철균/ 부산시 북구 금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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