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와 함께 ] 2000년11월14일 제334호 

[독자와함께] ‘학벌사회’에 조그만 파문이라도…

제332호 표지이야기 ‘무덤까지 간다, 당신의 학벌!’이 나간 이래로 꾸준히 독자들의 이메일이 들어왔다. 기사가 나간 뒤 한주 동안은 매일 두세통 이상의 독자의견이 쇄도했다. 그만큼 학벌·학력차별 문제가 ‘누구나’ 관련을 맺고 있는 ‘민감한’ 사인임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독자들의 반응은 대개 두세 가지 갈래로 갈렸다. “학벌차별의 벽을 적절히 지적해줘서 고맙다” 혹은 “정말 내 일이구나” 하며 읽었다는 독자도 있었고, “너무 학벌과 능력의 상관관계를 무시한 것 아니냐”, “모두 다 아는 사실을 반복할 뿐 개선 방안이 부족하다”는 질책성 이메일도 있었다. 특히 기사의 한계를 지적한 독자들은 일일이 미흡한 점을 지적하며 길게는 A4용지 두세쪽 분량의 감상문을 적어보내곤 했다.

상반된 독자들의 반응을 접하며 취재를 시작할 무렵의 막막함이 다시 떠올랐다. 교육과 취업, 결혼 심지어 평소의 인간관계에까지 스민 학벌·학력주의를 좁은 지면에서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마치 거대한 성벽 앞에 선 아이 같았다. ‘서울대 공화국’에 초점을 맞출까? 그것 또한 식상한 논조였다. 그러면 변해야 할 것들을 중점적으로 지적할까? 경제적 불평등에 따른 교육기회의 불평등, 도시와 농촌의 지역적 불균형, ‘학벌은 능력’이라는 인식의 문제…. 그건 결국 ‘체제의 문제’로 귀착될 정도로 광범위한 주제였다.

생각이 복잡해졌다. 그렇다면 자식이 공부 잘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그것조차 학벌·학력차별사회에 공모하는 일처럼 보일 정도였다. 어쩌면 학벌·학력차별에 관한 한 우리 모두는 공범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더구나 ‘학벌차별 철폐’가 화두로 떠오른 90년대 중반 이후 오히려 학벌·학력차별이 공고해지고 있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이 문제에 관한 한 ‘거짓말쟁이들의 공화국’이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바위로 계란을 치는 심정이었다. 기사를 쓰는 내내 회의가 들었고, 마감하고 나서도 무언가 빠뜨린 듯 찜찜했다. 다만 이 기사가 우리 내면에 깊숙이 자리잡은 ‘학벌·학력차별적 인식’에 잠시라도 파문을 일으켰으면 하고 바랐다. 반성과 성찰의 순간 말이다. 사회적 노동에 대한 평가가 달라져서 육체 노동자의 월급이 교수보다 많고, 교수와 트럭 운전사가 결혼하는 일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사회, 그건 꿈일까?

신윤동욱 기자syuk@hani.co.kr

너무 진부한 이야기 같다. 왜 기업들이 명문대생을 고용하는지에 대한 원인을 다루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가능하다면 정말 학력과 능력이 비례관계를 가지는지에 대해 조사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나는 별로 비례관계가 없다고 보지만 만약 비례관계가 있다면 학력차별은 차별은 아닌 셈이다.

Francis Hyun/JSHyun@univbrg.com

정말 무덤까지 가는 것이 학력인 듯하다. 이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깊이 생각도 해보고 연구도 해보았지만 이 사회에서 학력차별에 대한 공공연한 당위는 있어도 정작 그 문제에 대해 밀도있게 접근하는 글은 찾기 어려웠다. 피해 당사자인 저학력자들은 언론매체에 쉽게 접근할 수가 없는 탓일 게다. 앞으로도 <한겨레21>이 소외된 자들의 기사를 지속적으로 써줄 것을 기대한다.

김길현/khkim@ote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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