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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와함께] 논쟁을 두려워하는 슬픈 지성 가끔 방송사 토론프로그램을 보면서 느끼는 생각은 두 가지다. 한번 채널을 맞춰놓으면 그런 대로 논쟁에 빠져들어 끝까지 보게 되는 매력이 있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왜 이런 걸 아까운 시간에 방영하나 싶은 경우다. 물론 전자쪽이 사회전체로서는 훨씬 필요하고 긍정적인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 출연한 패널들의 ‘똥고집’과 동어반복, 그리고 매너없는 토론 예절에 기분만 잡치는 경우도 많다. 적어도 텔레비전 토론프로그램에 나올 정도의 인사라면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학식과 명성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출연자들이 볼썽사나운 입씨름만 하는 모습이 되풀이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전체 수준과도 관련이 있는 것같다. 사회 구성원들이 어쨌든 그들을 사회의 대표급 인사들로 받아들이고 대접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323호 표지이야기 <논쟁의 종말!>을 취재하면서 만난 각 방송사 토론프로그램 프로듀서들의 이야기는 너무나 한결같았다. 힘들어서 못하겠다는 것. 도대체 괜찮은 출연자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고 그들은 푸념했다. 기사에서 실명을 쓰지 않았지만 누구나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유명인사들의 어처구니없는 출연 뒷이야기를 들을 때면 우습기 이전에 남의 생각 남의 처지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사라진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보는 듯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이어령 새천년준비위원장은 논쟁을 통해 평생 자신의 지적사유를 담금질해온 인물답게 토론에 대해서도 확실한 철학과 원칙을 강조했다. 논쟁에는 치열함과 함께 운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렇기 위해서는 서로를 인정하는 자세가 기본이란 너무나 당연한 지론이었다. 그러나 이 기본이 요즘은 지켜지지 않는다. 일부 유명인사들은 “상대방의 도발에 상대할 가치를 못 느낀다”고 항변했다. 물론 그런 반응이 당사자로선 최선의 선택일 수도 있고 또한 그 자체로도 가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일부 인사들의 그런 반응 속에는 편협한 현실인식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었다. 빙빙 말을 돌려 표현했지만 결국 속내는 ‘나를 도발하는 상대에게 대꾸해주는 것 자체가 상대를 키워주게 되므로 그럴 수 없다’는 것이었다. 논쟁을 통해 함께 발전하는 것보다는 논쟁에 휘말리지 않고 자신의 현재 이익을 고수하겠다는 기득권의식인 셈이다. 모든 것을 이익과 손해로 따지는 천민자본주의적 철학이 지식인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란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구본준 기자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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