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와 함께 ] 2000년08월29일 제324호 

[독자와함께] 322호를 읽고...

내 소중한 봉사활동의 추억

‘결핍이 아이를 자라게 한다’ 기사 중 한사랑마을에서 봉사활동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보고, 지난해에 내가 경험한 일을 떠올려 보았다. 기사에서 지적한 대로 봉사활동은 아이들에게 나눔의 삶이 무엇인지 가르쳐주는 소중한 계기가 되는 것 같다. 지난해 여름에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의정부에 위치한 정신지체아 수용시설인 ‘인강원’이라는 곳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중학교 때부터 해오던 형식적인 봉사활동에 신물이 나서 진짜 의미있는 일을 해보겠다고 나선 일이었다.

처음 ‘인강원’ 입구에 들어설 때는 굉장히 떨리고 무서웠다. 텔레비전으로만 보던 아이들을 실제로 보니 약간의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마음속으로는 불쌍한 아이들에게 잘해주고 싶었지만, 행동으로는 잘 옮겨지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들 방을 청소하고, 그들을 돌봐주는 일이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마지막날에는 한 아이와 껴안고 볼을 마주대었는데, 그때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처음에 무서워했던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해졌다. 지금은 고3이라는 핑계로 찾아가지 못하고 있지만, 대학에 들어가면 규칙적으로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

고김은미/ 서울시 도봉구 창동

‘용돈 벌기’의 부작용을 우려한다

‘결핍이 아이를 자라게 한다’라는 기사가 지나친 풍요의 폐해를 지적하고 부족함에서 배울 것이 많다는 취지에서 쓰였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기사를 읽다보니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예를 들어 주윤이네가 집안일을 하는 대가로 용돈을 준다는 부분은 아이들에게 집안일의 기쁨을 알게 한다고 하지만 추천할 만한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발장 정리, 방청소, 책상 정리 등등은 가족의 공동생활을 위해서 필요한 부분이지 돈벌이의 수단이 아니다. 모두를 위한 즐거운 봉사가 아니라 오히려 돈이 생기지 않으면 할 만한 가치가 없는 일이라는 그릇된 생각을 심어줄 수도 있다. 어리지만 자기생활에 맞는 규모의 용돈을 필요에 따라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소비와 저축, 경영의 묘미 등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나이에 맞는 적정수준의 용돈을 주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더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국에서 살다온 연희동 우선희씨 사례와 함께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 아이들이 용돈버는 일을 소개하는 것이다. 기자가 쓴 대로 이는 “자본주의 소비사회에 적응하는 훈련”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 밖에 무엇이 더 있는가? 그 방식이 왜 좋은가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의 엄마로서 교육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도 듣고 때로는 남들 하는 대로 이건 아닌데 하면서 휩쓸릴 때도 있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나라에는 철학이 없다. 그저 우왕좌왕할 때가 많다. 이제는 제발 우리식의 교육방식이 정립되고 잘 전파되었으면 좋겠다.

박미라/ 인터넷 독자

일본의 뻔뻔함, 이미 병적인 상태

‘헛소리가 역사가 되는 나라’라는 기사를 읽고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2차 세계대전중 전범이었던 일본이 그들이 저질렀던 만행을 가슴속 깊이 속죄하지 않고 오히려 사실을 호도하고 자국의 역사교과서를 부끄러움보다는 자랑스러움으로 덧칠해 놓고 있다니, 어쩌면 이렇게 뻔뻔스러울 수 있단 말인가.

아직도 일본은 군국주의 망상에 사로잡힌 채 자국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배타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가끔씩 신문지면을 통해 왜곡된 일본 역사교과서 내용을 읽어보면 그들의 상태는 이미 병적인 수준에 이른 듯하다.

일본은 즉시 그들의 망발을 사과하고 전쟁도발에 대해서도 백배 사죄해야 하며, 생체실험이나 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용서를 빌어야 한다. 동시에 아무것도 모르는 전후의 일본 청소년들에게 진실만을 가르쳐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선진국으로서, 우리의 우방으로서 그들이 걸어가야 할 길인 것이다.

오형래/ 전북 전주시 효자동

의료문제, 제3자의 입장에서 봐달라

이번호에 실린 만화들은 한결같이 의사에 대한 악의에 가득 찬 내용이었다. 기사에도 타국의 의료체계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우리나라 의료문제의 해결방안을 자세히 제시하는 건설적인 내용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진정으로 독자를 생각하는 잡지라면 독자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어떤 쪽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을 사명으로 삼아야 한다. 의사의 입장만을 옹호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제3자로서 공정하고 진실에 어긋나지 않은 많은 정보를 부탁한다.

권형준/ 전북 전주시 인후동

<독자편지>

폭력진압, 외면하지 마세요

<한겨레21>에 부탁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 이렇게 편지 띄웁니다. 저는 극좌도 극우도 아닌 평범한 대학생입니다. 그래서 가끔 내용에 동의하는 집회에도 나가 서명운동도 하고 그래요. 그러면서 가장 많이 느낀 것이 집회에는 인권이 없다는 거예요(모든 집회가 그런 것은 아닌데, 특히 제가 다녀본 한총련 집회는 많이 그러더라구요). 학생들도, 전경들도 모두가 비이성적으로 변합니다. 제가 3학년이 되도록 아직 풀지 못한 숙제예요. 먼곳에서 기아로 사람들이 죽어갈 때 여기에서는 전경한테 맞은 친구들이 실명을 하고 뇌수술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해 2차민중대회 때 학생들이 동국대 앞으로 거리시위를 나갔어요. 그때 전경들의 폭력진압으로 한명은 실명, 한명은 뇌수술, 한명은 뇌사상태 그외에도 수많은 학생들이 작게는 찰과상, 크게는 골절상을 입었지만, 그에 대한 것을 신문에서 찾아볼 수 없었어요. <한겨레>도 다른 신문과 다름없이 과격 한총련 학생들에게 부상당한 여경의 이야기가 사회면에 작게 나왔더군요. 요새 매향리에 다녀온 친구들이 많은 부상을 입지만 어느 신문, 어느 잡지에도 폭력진압이라는 말이 거의 나오지 않았어요. 롯데같이 크게 다룬 경우는 정말로 예외고요. 그런 곳이 얼마나 많은데…. <한겨레21>은 좀더 다르게 접근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2년을 넘게 기다렸지만 다른 잡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중앙대 사범대 학생회에 있습니다. 저희 학교의 학생회는 모두 <한겨레>를 보며, 잡지는 <말>이 아니면 <한겨레21>을 봅니다. 집회에서 학생들이 부상당하는 모습을 보고, 다음날 집에 배달되는 신문에 실망을 하고, 학교에서 보는 <한겨레>에 다시 실망을 하게 됩니다. <한겨레21>에서만큼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만일 끝까지 읽어주셨다면, 길고 지루한 글 두서없어서 죄송하다는 말씀드리고, <한겨레21>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하다는 말씀과 더 노력하시라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이윤선/hanbbac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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