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와 함께 ] 2000년08월16일 제322호 

[독자와함께] 불행의 싹,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독선

‘파출소장 엄마 고발 사건’을 밀착취재한 320호 머릿기사 ‘누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가 나간 뒤, 독자들의 반응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뉘었다. 첫째는 ‘사건 이면의 진실을 알았다. 엄마가 불쌍하다’는 의견이었고, 둘째는 ‘가정을 가진 여자의 불륜은 무책임하다. 아무리 힘들어도 참았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셋째는 지면에서 다루기 힘들 정도로 심한 표현들을 썼으나 내용을 요약하자면 ‘<한겨레21>은 얼치기 진보지이고 기자가 여자인 걸 봐서 틀림없이 편협하다’라는 주장이었다.

독자들 반응이 뜨거우면 기자로서는 행복한 일이지만, 이런 표현이 허락된다면, 이번 경우는 무척 우울했다는 것을 밝힌다. 논쟁이 남녀 성대결로 치달으면서 도저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어떤 주장이나 견해에도 찬반양론이 있을 수 있다. 특히 쌍방향 토론이 가능한 인터넷 시대에 이런 논쟁은 사회적 의제를 설정하고 풀어나가는 데 매우 유효하고 적절한 의사결정 수단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터넷한겨레> 토론방과 기자의 이메일박스에 오른 글에는, 우리 사회 여성의 지위와 가족문화, 혹은 그것에 대한 여성의 피해의식 등에 대해 논리적으로 쓴 글들도 많았지만 그 수만큼이나 욕설과 비아냥으로 점철된 언어폭력에 가까운 글들도 많았다. 심지어 아직 공식입장을 발표하지 않은 여성단체들을 싸잡아 욕하는 글도 있었다.

불현듯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세포에 해당하는 한 가정에서도 이런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성원간의 합리적인 논의를 가로막는 편견과 아집의 태도들 말이다. 일방의 희생을 전제한다거나 상대방의 인격을 무시하는 주장은 이제는 버려야 할 유산이 아닌가 한다.

김소희 기자sohee@hani.co.kr

아무리 엄마가 외도를 했다하여 그렇게 철저히 사회적으로 매장시킬 정도로 나빴을까. 지금껏 남편의 폭력 속에서 수없이 참아온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현재의 결과에 따라 엄마로서의 자질을 욕한다면 그건 이기주의일 수밖에 없다. 김 경위도 며느리이자 아내, 엄마이기 전에 한 여성으로서 당당히 자신의 삶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전미희/ 대전시 동구 용운동

미국에서 결혼과 가족치료를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이다. 엄마는 20년간 경찰관으로 지내면서 누구보다 가정폭력의 해결방법을 잘 알고 있지 않았을까. 자녀에게 부부갈등을 설명하고 이혼 뒤에 다른 남자와 동거했더라면 딸이 분노를 품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40대의 여성이 철없는 10대 아이들처럼 일탈행위를 한 것에 대해 어떻게 변명할 수 있겠는가. 이 가족은 대화가 단절되고 온 가족이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역기능 가족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가부장적 질서나 개념이 아니라 바로 이런 원만하지 못한 의사소통이라고 생각한다.

케빈 김/deokil@hosanna.net

나는 교직에 있다가 육아문제로 교직을 포기했고, 아이들을 키워놓고 학원 강사를 하고 있다. 일하는 여성들은 마음이 참 황폐하다. 처음에는 자아실현이나 경제적인 이유로 버티지만 아이들이 커가면서 위기를 맞는다. 우리의 교육 여건이 어머니의 책무를 요구하는 게 많은데다 그들은 대부분 너무 지쳐 있다. 직업인으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임무를 수행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정체성마저 상실하고 만다. 김 경위의 경우도 직업적 성공이 가족들에게는 전혀 인정받지 못한 데서 비극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강혜선/sanso86@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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