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추적 ] 2003년12월26일 제490호 

시장주의자들의 교육부 습격?

후임 교육부총리로 물망에 오르는 인사들에 대해 진보적 교육단체들 강력 반발

윤덕홍 교육부총리의 자진 사퇴로 입지가 좁아진 진보적 교육단체들이 ‘교육 시장주의자들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나섰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으로 구성된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는 지난 12월19일 특정 인사의 교육부총리 임명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참여정부가 시장주의자들에게 교육을 맡기고 대선 공약과 다른 방향으로 교육정책을 이끌어갈 경우 (총선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진/ 12월17일 청와대에 사의를 표명한 윤덕홍 교육부총리가 사퇴 사유를 밝히고 있다. 전교조 등은 “시장주의자들이 교묘하게 ‘윤 부총리 흔들기’에 나섰다”고 주장했다.(연합)


5 · 31교육개혁의 주인공, 박세일

전교조 등이 ‘시장주의자’로 지목하는 인사는 박세일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서울대 교수·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 위원장)과 안병영 전 교육부 장관(연세대 교수)이다. 이들은 김영삼 정권 때 청와대 수석과 교육부 장관을 역임했는데, 최근 청와대 내 경제관료들과 경제부처 관료들, 교육부의 보수적인 관료들에 의해 후임 부총리로 강하게 천거되고 있다.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는 이들이 김영삼 정권 말기에 교육의 시장성을 강조한 대표적 정책인 5·31교육개혁을 추진했다는 점에서 ‘결격사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안승문(43) 서울시교육위원은 “5·31교육개혁은 학교에 시장원리를 도입한 것으로 교육부의 실정 중 대표작으로 꼽힌다”라며 “이를 추진한 인사들에게 교육부를 맡기면 참여정부의 교육개혁은 물건너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5·31교육개혁은 교육부문에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른 민영화와 규제완화, 자유화 개념을 도입해 지나치게 경쟁원리를 강조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사회적 평등 개념이 강한 교육부문에 시장원리를 도입할 경우 자칫 교육의 사회통합적 기능이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진보적 교육단체들은 특히 박 전 수석을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박 전 수석이 교육개혁포럼을 운영하면서 교육의 시장성을 강조하는 정책의 ‘산파’ 구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전 수석이 대표를 맡고 있는 교육개혁포럼은 △사립학교 운영 자율화 △학생·학부모의 학교 선택 자율권 확대 △학교 경쟁 시스템 도입 등 평준화 원칙에 반하는 정책들을 많이 양산해냈다. 안 위원은 “교육개혁포럼의 시장주의자들은 평준화와 입시제도의 문제에서 경쟁원리를 지나치게 강조한다”며 “참여정부의 교육개혁 방향과 근본적으로 맞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

전교조 등 교육단체들이 시장주의자들에게 강한 ‘반감’을 보이는 이유는 또 있다. 이들이 개혁적인 장관들의 조기 퇴진에 큰 책임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윤 부총리의 경우 평준화 해제와 특수목적고 설립 문제 등으로 시장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았다. 정운찬 서울대총장의 평준화 해제 발언과 이명박 서울시장의 강북지역 특목고 설립 발언 파문 때 윤 부총리는 시장주의자들의 언론을 통한 ‘융단 폭격’에 시달렸다.



사진/ 교육부총리 물망에 오른 박세일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 위원장은 김영삼 정부 때 교육의 시장성을 강조한 5·31교육개혁을 주도했다(왼쪽,한겨레 윤운식). 이종재 한국교육개발원 원장도 고교 평준화 문제에서 시장주의자들과 비슷한 견해를 갖고 있어 반발을 사고 있다.(한겨레)

전교조 관계자는 “시장주의자들이 평준화를 비판하는 칼럼을 쓰면서 교묘하게 ‘윤 부총리 흔들기’에 나섰다”고 주장했다. 윤 부총리 측근들은 최근 윤 부총리의 경질설도 청와대의 일부 관료들에 의해 부풀려졌다고 보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최근 발표된 장관 수행 평가에서 윤 부총리는 좋은 점수를 받았는데, 언론에는 윤 부총리가 문제가 많은 것으로 보도돼 결정적인 타격을 받았다”며 “경제관료들의 조직적인 흔들기에 윤 부총리가 당했다”고 주장했다. 윤 부총리의 총선 출마설도 청와대 관료들이 부풀렸다고 주장한다. 교육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윤 부총리는 유임을 강력하게 희망했는데 마치 총선에 뜻이 있는 것처럼 소문이 돌아 낙마할 위기에 처했다”며 “출마 소문의 근원지는 청와대”라고 주장했다.

교육 로드맵을 살려라

김대중 정권 말기의 한완상 전 장관도 시장주의자들의 공격에 시달렸었다. 한 장관은 국무회의 자리에서 “기업의 입사원서에 출신학교 이름을 쓰지 말도록 하자”고 제안했다가 경제관료들의 ‘벌떼 공격’을 받았다. 한 장관은 학력차별을 없애자는 차원에서 제안했는데, 경제관료들은 이를 ‘사회주의적인 발상’으로 몰아갔다. 결국 한 장관은 경제관료들의 집단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1년 만에 조기퇴진해야 했다.

전교조 등은 또 다른 후보로 거론되는 이종재 한국교육개발원장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다. 이 원장이 고교 평준화 문제에 대해 시장주의자들과 비슷한 견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전교조 관계자는 “평준화 보완책으로 특목고 설립을 주장하는 것은 평준화의 틀을 지키려는 의지가 없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교육개혁을 추진해야 할 교육부총리로서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 원장은 최근 사교육비 대책과 관련해, “학원가의 스타 강사를 학교에 끌어들여 교사들과 경쟁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교사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교육계 인사는 “이 원장은 박 전 수석이나 안 전 장관에 비해 교육 철학을 갖고 있는 분이지만 참여정부의 교육개혁 방향과는 잘 안 맞는다”고 평가했다.

반면 참여정부 초기에 윤 부총리와 경합을 벌였던 이종오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은 전교조 등 진보단체들에 의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 수석은 보수단체들과 교육부 내 일부 관료들의 강한 반대로 입각이 쉽지 않아 보인다.

교육단체들은 참여정부가 김대중 정권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김대중 정권이 교육부 장관을 지나치게 자주 교체함으로써 교육정책이 실종된 폐해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신임 부총리는 고교 평준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사교육 대책 등 굵직한 현안을 해결해야 할 부담이 있기 때문에 인선 과정이 더욱 엄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교조 소속의 한 교사는 “최근 발표된 교육부의 교육개혁 로드맵이 개혁적인 내용을 담고 있긴 하지만, 어떤 인사가 교육부총리로 오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며 “지금은 교육부를 장악할 수 있는, 개혁 마인드와 지도력을 겸비한 인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청와대가 교육부총리를 정치적 이해에 따라 쉽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참여정부의 교육 로드맵의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 교육부, 이름은 바뀌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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