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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장 못 살겠다, 집회시위 보장하라” 집시법 개악과 함께 ‘고생 끝 행복 시작’을 외쳤던 어느 경찰 고위간부의 2004년 12월 이야기
“치지직… 치지직… 연잎 팔, 꽃잎 십이. 모두 이십점. 모두 이십점. 지금 세종로에 누워 있음. 연필 열두개. 연필 열두개도 같이 있음.” (연잎과 꽃잎, 연필은 각각 남성과 여성, 기자를 뜻하는 경찰의 무전용어)
시계를 보니 밤 11시. “또 시작이구만. 저 놈들은 잠도 없나. 썩을 놈들.” 서둘러 무전기와 점퍼를 챙기지만 입에서는 욕이 절로 나온다.
누가 다치는 게 더 무서울까
오늘만 기습시위 3건째다.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몰라 한달 전부터 아예 경찰서에서 먹고 잔다. 지난 2월 대규모 집회를 사실상 불허하는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집에서 제대로 잠을 자본 적이 없다. 현장에 나가보니 상황은 정말 가관이었다. 이날은 아예 20명이 쇠사슬을 몸에 묶고 세종로에 누워버렸다. 가뜩이나 지난봄 정부가 이라크에 3천명을 추가파병하면서 항의집회가 이어지고 있는데, 며칠 전 또 5천명을 보내겠다고 발표하면서 종로 일대는 연일 계속되는 기습시위로 ‘난장판’이 돼버렸다. 누워 있는 시위대를 보니 “이것들이 죽으려고 환장했나…” 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생각 같아서는 방망이로 한대씩 후려쳐서 끌어내고 싶지만, 어디서 연락을 받았는지 기자들이 시위대와 함께 도로를 ‘점거’하고 있으니 침만 꼴딱 삼킬 뿐이다. 차들은 길을 뚫어주지 않는다며 여기저기서 빵빵댄다. 그도 그럴 것이 세종로는 서울 시내에서 교통량이 가장 많은 곳 중 하나다. “어서 끌어내!” 상황은 곧 종료됐고, 김 서장은 끌려나온 시위대에게 점잖게 한마디 했다. “이게 뭡니까. 그러다가 차에 치이면 어쩌려고 그래요.” ‘도대체 누구 죽는 꼴 보려고 이러는 거야’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았다. 김 서장 입장에서는 시위대가 다치는 것보다, 본인이 ‘다치는 것’이 더 무섭다. 사고 책임을 묻기 시작하면 김 서장도 책임을 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장 생활 5년째. 잘나가는 동기들은 벌써 경무관이 됐다. 내년 초에 있을 승진인사를 위해 그동안 얼마나 공을 들여왔던가. 올 초 인사에서 ‘물먹은’ 김 서장은 내년 초에 승진하지 못하면 ‘끝’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여기는 국가 ‘주요시설’을 끼고 있는 ㅈ경찰서다. 큰 사고만 안 치면 승진은 보장된다. 이따위 시위 몇건 때문에 그동안 쌓아온 공을 망칠 수는 없다. 하지만 지난 2002년 한총련 학생들이 미 대사관에 들어간 일 때문에 당시 서장의 ‘모가지’가 날아간 걸 생각하면 없던 변비까지 생길 지경이다. 지난해 이맘때, 집시법 개정안이 통과될 때만 해도 김 서장은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밖에서 ‘개악안’이라느니 ‘기본권 탄압’이라느니 난리를 쳐댔지만, 업무 대부분이 집회와 시위, 청와대 경비와 관련된 김 서장이 보기에 개정안은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집회없는 행복한 세상’은 물건너가고…
가장 통쾌했던 것은 서울 시내 주요도로 주변에서는 경찰의 허가 없이 집회나 행진이 불허된다는 조항이었다. 말이 주요도로지, 서울 시내만 해도 2번 주요도로는 서울 오류동부터 영등포역∼여의도∼광화문 네거리∼종로∼청량리∼상봉동∼망우리까지 이어진다. 서울에만 이런 식으로 1번부터 15번까지의 주요도로가 지정되어 있다. 웬만한 도로는 전부 집회금지 구역에 포함되는 셈이다. 신설된 소음 규정을 볼 때는 ‘햐~, 누군지 머리 좋다’ 하면서 무릎을 쳤더랬다. 이 규정으로 80데시벨(dB) 이상의 소음을 내면 경찰이 집회를 금지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일상 대화가 60dB, 집에서 음악감상을 할 때가 85dB이니, 사실 80dB 이상을 단속한다는 건 마이크나 확성기를 써야 하는 대규모 집회를 아예 못 열게 하는 효과가 있다.
집시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던 날, 김 서장은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법대로’ 처리하고 ‘일벌백계’로 다스리면 ‘집회 없는 행복한 세상’이 올 거라 생각했다. 사회단체들이 ‘불복종 운동을 벌이겠다’며 협박했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이렇게 밤이고 낮이고 ‘집회금지 구역‘에 ‘출몰’해 끈질기게 괴롭힐 줄은 몰랐다. 집회·시위를 ‘법대로 처리’하니, 예상치 않은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시위대의 ‘주요도로’ 진입을 막으면서 경찰과 시위대의 크고 작은 충돌은 오히려 더 많아졌다. 2만명 가까이 모였던 11월의 노동자대회 때는 정말 아찔했다. 저쪽에서는 ‘평화집회 보장’을 외치고, 이쪽은 ‘합법보장, 불법필벌’을 주장하다 결국 크게 부딪쳐 양쪽의 피해가 컸다. 부상자는 갈수록 늘고, 직원들의 사기는 지하암반수 나오는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젠 아예 신고도 안 하고 집회를 열거나, 몇백명이 모였다가 흩어지고 다른 곳에 다시 모이는 ‘홍길동’형 시위마저 유행이 된 형편이다. 아무리 특수공무집행 방해니 폭력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이니 하면서 붙잡아와도 무슨 ‘중공군 인해전술’인지, 어디서 그렇게 꾸역꾸역 나오는 건지…. 이제는 조사하는 형사들이 “설렁탕값이 더 들어간다”며 투덜댄다. 게다가 개정안이 ‘타인에게 현저한 피해를 줄 경우’ ‘심각한 교통불편을 줄 우려가 있는 경우’ 등 경찰에게 폭넓은 재량권을 주다보니, 적용 기준이 모호하다며 온갖 행정 소송을 걸고 있다. ‘나처럼 법 없이 살 사람이 또 어디 있다고…’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부아가 치밀어오른다.
언론은 경찰만 조져대다
지난해 ‘집시법 개정해야 한다’며 경찰에게 힘을 실어줬던 몇몇 신문은 등을 돌려 경찰만 조져대기 시작했다. 뭐라던가. ‘게릴라 시위’라나. 이름은 잘도 붙인다. 여하튼, 처음에는 ‘게릴라’들을 욕했지만 별 효과가 없자, 이젠 만만한 경찰을 못살게 굴고 있다. 경찰의 무능력으로 시민들이 불안해한다는 둥, 첩보 입수도 제대로 못한다는 둥…. 기사가 하나 나올 때마다 경무관 배지는 10m씩 저만치 멀어지는 것 같다. 차라리 예전처럼 질서유지인이 있으면 도로 행진을 허용하고, 촛불시위 같은 대규모 시위가 있을 때 두세 시간 동안 교통 통제해주던 때가 훨씬 좋았다. 적어도 그때는 이렇게 조마조마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적어도 고맙다는 말이라도 들었다. “이거 나라도 집시법 재개정 운동에 나서야지, 원….” 경찰서로 돌아오는 김 서장의 입맛이 쓰다.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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