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추적 ] 2003년11월19일 제485호 

‘럼즈펠드 후폭풍’이 문제다

주목해야 할 공동성명 제2항의 ‘전투병 파병 암시’…앞으로 미국의 공세 간단치 않을 듯

미국은 과연 ‘비전투병 위주의 3천명 한국군 추가파병안’을 수용한 걸까.

취임 뒤 3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11월17일 기자회견에서 유난히 감사하다는 인사를 자주 했다. 하지만 그는 구체적인 파병 수와 성격 등과 관련한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는 직답을 하지 않고, ‘파견국이 직접 결정할 사안’이라며 비켜갔다. 그는 파병 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언제, 어떻게 이라크의 평화정착과 재건에 가장 기여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파병 지역과 임무 등을 먼저 결정해야 그에 맞는 파병군의 성격과 규모 등이 정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사진/ 조영길 · 럼즈펠드 한-미 국방장관 회담. 가장 뜨거운 관심을 모은 파병 규모와 성격 등과 관련한 민감한 문제의 합의는 일단 뒤로 밀어놨다.(한겨레 임종진 기자)


럼즈펠드도 한국여론을 의식했으나…

제35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가 끝난 뒤 나온 공동성명 내용도 이를 뒷받침한다. 공동성명에서 럼즈펠드 장관은 이라크에 추가병력을 파견하고 2003년부터 2007년까지 2억6천만달러의 재건비용을 제공키로 한 노무현 대통령의 결정에 사의를 표시했다. 이어 럼즈펠드 장관은 ‘순조롭고 시의적절한 파병을 보장하기 위해 특히 정보공유 및 군수계획과 관련해 대한민국과 긴밀히 협력할 것을 약속했다. 가장 뜨거운 관심을 모은 파병 규모와 성격 등과 관련한 민감한 문제의 합의는 일단 뒤로 밀려난 셈이다. 연례안보협의회에 참석했던 이봉조 국가안보회의(NSC) 정책조정실장은 ‘파병부대의 성격과 파병 지역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가 양국간에 있었느냐’는 질문에 “이제 협의를 시작한 단계”라면서 “미국과 계속 협의할 문제”라고 밝혔다.

파병 문제는 애초부터 원론적 수준의 합의만 예상됐다. 2시간20분이라는 짧은 회담 시간과 용산기지 이전 등 민감한 다른 의제들이 많아 심도 있는 논의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또 한-미 양국은 이미 상대방의 입장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고, 파병 반대 움직임이 심상치 않는 상황이라 애초부터 이번 회담에서의 완전 결론은 부담스러워했다는 후문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럼즈펠드는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는 이라크 상황과, 이와 맞물린 한국 내 이라크 파병 반대 여론 등을 감안해 한국 정부와의 정면 충돌을 피한 듯하다”고 말했다. 맹방인 일본도 이라크 상황 악화를 빌미로 이라크 파병 연기를 밝힌 마당에 한국 정부에만 대놓고 압력을 넣을 경우 파병 결정 자체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역풍을 피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부시 행정부는 한국군의 추가파병 결정 자체를 철회할 가능성에 전전긍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종일 국가안보보좌관에 이어 이봉조 NSC 정책조정실장이 17일 한국쪽 이라크 파병안에 대한 미국쪽의 수용 여부에 대해 “미국이 우리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말한 만큼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밝힌 것도 이런 미국의 처지를 계산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청와대의 다른 고위 관계자도 “우리가 밝힌 3천명 파병 규모는 미국,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병력 규모이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지난 11월16일의 파병철회국민궐기대회. 부시 행정부는 한국군의 추가파병 결정 자체를 철회할 가능성에 전전긍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류우종 기자)


럼즈펠드는 이번 방한을 통해 노 대통령의 추가파병 결정의 번복을 차단하는 데 우선순위를 뒀을 가능성이 크다. 그가 노 대통령의 추가파병 결정에 유난히 감사를 표시하는 배경이다. 당장 발등의 불부터 꺼놓고 추가 협상하겠다는 의도인 셈이다. 따라서 적잖은 정부 관계자들은 럼즈펠드 후폭풍에 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주목할 대목은 공동성명 제2항이다. 한-미 국방장관은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이 그들의 국가를 재건하면서 공격 행위를 예방하고 테러리즘을 제거할 수 있는 안정적이고 민주적인 기구를 수립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동의했다. 미국이 평소 일관되게 요구해온 안정화 군대의 파견 필요성을 재강조한 대목이다. 이는 물론 순수 재건을 염두에 둔 이라크 추가파병을 고려하는 한국 정부의 뜻과는 크게 어긋난다. 이라크 과도통치기구 등이 외부의 공격 행위를 예방하고 테러리즘 제거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전투병 파병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추가파병 실현에 외교력 총동원한 미국

미국쪽 냉기류는 럼즈펠드 방한 전에 충분히 감지됐다. 워싱턴의 입장을 대변하는 토머스 허바드 주한 미 대사는 11월13일 한 강연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전투병 파병’이라고 명확한 선을 그었다. 파병 시기와 관련해서도 가급적 이른 시일 안에 보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리처드 롤리스 미 국방부 부차관보는 14일 한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11월5∼6일 파병협상에서) 미국은 이라크 주둔 주력부대가 교체되는 내년 2월께 파병해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며, 반면에 “한국은 4월 또는 5월을 거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사진/ “정말 미국에 당당히 맞설 수 있을까?” 11월17일의 청와대 수석 · 보좌관 회의에서 반기문 외교보좌관(왼쪽)과 나종일 국가안보보좌관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모아보면 미국은 한국쪽이 제시한 3천명 안팎의 파병 규모에서 양보하고, 대신 전투병 위주로 이른 시일 안에 파병해달라는 요구를 할 가능성이 높다.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이번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에서 어떤 추가적 요구를 했는지는 당장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공동성명 제2항 합의를 유추하면 기존 입장 고수가 감지된다.

차영구 국방부 정책실장은 11일 “지난주(11월5∼6일) 워싱턴 대미협상에 가보니 지난 9월의 미국 입장은 그대로면서 기대가 더 커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구체적으로 몇명 등은 협의하지 않았지만 미국쪽의 기대가 지난 9월 이상의 희망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 이유로 지난 9월에는 많은 나라가 다국적군으로서 참여 가능성이 지금보다 더 많았고, 터키가 1만명을 파병하겠다고 해놓고 이라크 거부로 무산되고 예상했던 다른 나라도 미흡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공병·의무병 같은 기능부대의 소요보다는 ‘안정화’를 위한 치안유지군을 원한다고 못박았다. 부시 행정부의 의도와 속셈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설명이다. 차 실장의 설명은 외교부 관계자들이 전하는 미국쪽 의도와 거의 일치한다. 앞으로 미국의 공세가 간단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들이다.

부시 행정부는 한국의 추가파병 실현에 외교력을 총동원하고 있다. 럼즈펠드가 이라크 사태가 날로 악화되는 와중에도 펜타곤을 떠나 일본과 한국을 방문한 것도 사정이 다급해진 까닭이다. 럼즈펠드의 어깨에는 일본으로부터는 전후 재건 지원 경비를, 한국으로부터는 대규모 치안유지 군대를 빼오는 막중한 임무를 떠맡았다. 다행히 일본 방문에서는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본은 이라크 재건비용으로 50억달러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후쿠다 야스오 일본 관방장관은 지금의 이라크 사태가 자위대를 파견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은 아니라면서도 “가능한 빨리 파병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럼즈펠드는 6자회담에서 대북 서면 안전보장이 이뤄지더라도 “결코 미-일 방위조약을 해치지 않는 내용이 될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일본은 그간 부시 행정부가 북한에 안전보장을 약속하면 일본이 북한으로부터 공격받을 경우 미국이 반격할 수 없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밝혀왔다.

‘청와대의 호언’믿을 수 있을까

하지만 한국 방문 분위기는 일본 때와는 사뭇 달라 보였다. 한국 정부를 상대하기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탓이다. “럼즈펠드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부시 정부의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밝힐 것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우리 정부의 일관된 방침만 얘기할 것이다. 3천명 규모의 평화재건 중심의 한국군을 우리 주권 사항으로 결정할 것이라고, 우리의 방향과 지침을 명확히 정했기 때문에 럼즈펠드가 아무리 떠들어도 당당히 맞설 것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말이 그대로 실천될지 두고 볼 일이다. 럼즈펠드는 떠났지만 파병과 관련한 뜨거운 논란은 끊이지 않을 것 같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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