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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헷갈려! 경수로 사업 중단 등 예측할 수 없는 대북 행보… 강경파 주도로 북핵 해법 제동 걸기도
“부시 행정부 내부는 대북정책과 관련해 여전히 분열되어 있다.” 정부의 한 핵심 관계자는 대북 경수로 건설 중단 소식이 나온 직후 핵 문제 해결의 걸림돌로 부시 행정부의 심각한 내부 분열상을 지적하는 데 서슴지 않았다. 이 발언의 배경에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강한 불신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 부시 행정부의 주도에 의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는 마침내 11월3일과 4일 이틀간 뉴욕에서 비공식 집행이사회를 열어 대북 경수로 건설 공사 중단을 결정했다. 최종 발표문은 11월21일 열리는 공식 집행이사회에서 나올 예정이다. 예상된 수순이기는 하나 2차 6자회담 개최 분위기가 무르익는 와중에 경수로 중단 카드를 빼낸 부시 행정부의 의도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경수로 건설사업 중단’은 1년간의 한시적 조처라고 못박고 있지만 영구 중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과연 지금이 이런 ‘초강수’를 둘 만한 적절한 시점이냐는 반문이 제기되고 있다.
6자회담 분위기에서 대북 초강수
더구나 이라크 전쟁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부시 행정부는 북핵 해결을 위한 2차 6자회담이 가시권 안에 들어오면서 나름대로 한숨 돌리는 참이었다. 이라크 전후 상황 악화에 이어 북핵 문제까지 꼬일 경우 부시 행정부로서는 그야말로 사면초가 상태에 빠질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은 얼마 전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기간에 다자틀 속 체제 안전의 문서 보장안을 북쪽에 제시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 정권에 대한 극도의 불신감을 접지 않던 부시 대통령이 직접 북한 체제 안전보장을 언급한 사실을 매우 이례적으로 받아들였다. 미국의 요청에 따라 우방궈 중국 상무위원장의 방북이 이어졌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0월30일 우방궈 상무위원장을 만나 대화를 통한 평화적 북핵 문제 해결 원칙에 공감하고 후속 회담 개최에 동의했다. 중재자로 나선 중국의 입장을 배려한 측면도 있지만, 나아가 부시 대통령의 체면도 고려한 고도의 정치적 제스처였다. 그래서 북한의 당황스러움은 더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11월6일 “이것(경수로 사업 중단)은 우리가 이미 예측한 바 그대로이며 별로 놀라운 것은 아니다”라고 전제하면서도 “문제는 6자회담 재개가 논의되고 있는 때에 미국이 왜 이렇듯 우리에게 자극적인 행동을 하는가 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대변인은 이어 “우리는 미국이 과연 앞으로 회담이 재개되는 경우 우리에 대한 정책전환을 할 것인지 의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으며, 미국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어이없어해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경수로 건설사업의 실질적 중단 조처는 부시 행정부의 또 다른 실책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는 당장 6자회담의 재개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지 모르나 문제해결을 그만큼 더디게 만들 개연성이 높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북한은 경수로에 강한 집착을 보여왔다. 경수로 유치는 당장 안정적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또한 국내 정치적으로 경수로는 미국과의 어려운 경쟁에서 이긴 전리품으로 인식되고 있다. 김영일 외무성 부상이 지난 8월 베이징에서 열린 1차 6자회담에서 경수로가 완공되는 시점에 핵시설을 해체한다는 동시행동 순서를 제시한 데서도 경수로의 중요성을 읽을 수 있다. 따라서 경수로 사업의 지속 여부는 북한 국내 정치 차원에서도 결코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사안이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11월6일 경수로 납입 지연에 따른 전력손실을 보상하기 전까지는 금호지구에 반입된 경수로 발전소 건설 장비와 설비, 자재, 기술문건들의 반출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경 발언을 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국가안보회의 주도… 실책 가능성 높아
남쪽 정부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정세현 통일부 장관은 11월7일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쪽에서 경수로 영구 중단이 거론되는 데 대해 “미국도 벼랑 끝 전술을 상당히 쓰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북한이 핵 프로그램 존재를 시인한 이후 제네바 합의 파기와 경수로 제공에 따른 플루토늄 추출 가능성의 원천 제거를 내세우는 미국 매파들의 압박에 힘겹게 대응하면서도 공사는 멈추지 않았다. 정부는 경수로 중단 문제는 가급적 6자회담에서 자연스럽게 논의하고, 북한의 태도에 상응해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북핵 위기가 고조되는 와중에서도 사업을 강행해왔다. 지난 3월 말 공정률이 29.6%에서 10월 말 34%로 높아진 데서도 확인된다. KEDO 비공식 집행이사회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영구 중단’이 아닌 ‘1년간 한시적 중단’이 결정된 것도 남쪽 정부의 입장을 그나마 배려해서다. 이럴 경우에도 경수로 건설 중단 조처로 2차 6자회담의 결과를 낙관할 수 없게 된데다, 현재 북한의 신포·금호지구 경수로 건설 공사에 참여 중인 한국전력·두산중공업·한국전력기술주식회사 등과 현대·동아·대우 등 건설회사들의 공사 중단에 따른 직·간접 피해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한국은 지금까지 10억달러 가까운 비용을 투자했다. 그렇다면 부시 행정부는 왜 이런 미묘한 시점에 강수를 둔 걸까. 지금으로서는 강온파 대결의 산물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하늘이 두 동강 나도 북한과는 화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세력이 행정부와 외곽 싱크탱크에 깊숙이 박혀 있다. 이들은 최근 부시 대통령이 대북 체제 안전보장을 거론한 사실도 못마땅해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런 점은 이라크 전후 상황 악화가 이들의 대북공세를 견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 관계자의 귀띔이다. 부시 대통령은 아시아 순방 도중 북한에 핵 포기의 대가로 안전보장을 제의했으나, 지금은 북한 체제 안전보장의 수준, 북핵 입증 방법과 협상 개시 시기 등을 놓고 심각한 내부 논쟁이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대북 강경론은 미국 행정부 내 국가안보회의(NSC)가 주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28~31일 북한을 공식 방문할 예정이던 커트 웰던(공화·펜실베이니아) 하원의원 등 공화당과 민주당 소속 하원의원 10명의 2차 방북을 무산시킨 것도 국가안보회의였다. 이들의 방북 무산이 주목되는 까닭은 북한이 이들에게 이례적으로 영변 핵단지 방문까지 허용하면서 핵 문제 해결 의지를 보여주려 했기 때문이다. <조선중앙통신>는 10월26일 “(의회) 대표단의 희망대로 영변 핵시설 참관을 통하여 재처리 완료와 그 과정에서 얻어진 플루토늄 용도 변경 정형을 현지에서 보여주는 방향에서 일정을 준비하였다”고 밝혔다. 웰던 의원 등은 10월30일 부시 대통령에게 보낸 항의 서한에서 “우리가 아는 한 교전지역의 방문을 제외하고는 대통령이 의원들의 여행을 금지한 전례가 없다”며 “지난 5월 방북을 직접 막으려고 했던 것도 국가안보국(NSA)과 국가안보회의였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지난 1년간 북한과 관련한 여러 사안에서 국가안보보좌관과 국가안보회의는 행정부 내 다른 유관 부서들과는 아주 다른 패턴을 보여왔다”며 박길연 유엔 주재 대사와 한성렬 공사의 2003년 조찬 기도회 참석을 저지한 것도 국가안보회의였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원천봉쇄하는 선봉에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서 있는 셈이다.
정녕 부시는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웰던 의원 등은 6자회담이 지속되는 동안 북한 체제 안전을 보장하는 문서와 핵 문제가 완전 해결된 이후의 항구적 안전을 보장하는 문서 등 2단계 북핵 해결 방안을 제시해 눈길을 끈 바 있다. 이 해법은 웰던 하원 군사위원장 일행이 5월 말 방북 때 북한 지도부에 제시해 큰 호응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법에 따르면 첫 단계에서 미국이 1년 시한의 대북 불가침조약 체결, 북한 정권 승인, 경제지원 등의 조처를 취하면 북한은 핵무기 개발 완전 중단, 핵개발 설비 공개 및 사찰의 수용, 핵확산금지조약(NPT) 재가입 등의 조처를 취한다. 1단계에서 상호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면 2단계에서 미국은 영구적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고, 농업과 교육, 에너지 지원을 위한 한-미-일 협의체를 구성한다. 이에 북한은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에 가입하고, 북한 내 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일정을 제시해야 한다. 이 제안은 북한이 줄곧 요구해온 ‘동시, 일괄타결 원칙’에 상당히 근접했기 때문에 부시 행정부만 성의를 보여 호응할 경우 북핵 해결의 획기적 진전이 기대되었다. 하지만 국가안보회의는 이들의 방북을 저지하고, 경수로 중단 결정을 주도함으로써 부시 행정부의 ‘진정한 의도’에 궁금증을 더해주고 있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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