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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이슈추적 등록 2003.10.08(수) 제479호

[이슈추적] [21세기 냉전의 그늘] 지금 국보법은 ‘전가의 보도’

송두율 교수 사건은 우리 사회가 냉전이라는 과거의 늪으로 얼마나 빨리 회귀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반성문 썼나요? 전향서를 냈다는 얘기는 없습니까?” 검찰을 출입하는 기자들이 검찰 간부를 상대로 송 교수 수사 관련 취재를 하면서 끊임없이 내뱉는 말이다. 사상전향 제도는 이미 지난 1998년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국내외의 거듭된 지적 때문에 폐지됐다. 그것을 대신해서 도입한 준법서약서는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인 국가보안법 사범의 석방조건으로 내도록 한 것이지만 이 역시 현 정부 들어 지난 7월 폐지됐다. 대신 국가보안법의 공소보류 결정을 했을 때 ‘충성서약서’라는 양식을 검사에게 내도록 하는 제도는 ‘공소보류자 관찰규칙’(법무부령)으로 남아 있다. 송 교수가 공소보류 조처를 받지 않는 이상 무슨 전향서나 반성문을 쓸 이유가 없는 셈이다. 남아 있지도 않은 전향서를 냈는지 다그치는 기자들의 수준은 우리 사회가 이 사건을 다루는 수준과 일치한다.

송 교수에게 적용된 법이 그동안 그렇게 개폐 논란에 휩싸였던 국가보안법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송 교수의 핵심 혐의로 적용될 예정인 3조의 ‘반국가단체’ 규정은 6·15 공동선언 이후 국가보안법 개폐 논란이 있을 때마다 주요 개정 또는 폐지 대상으로 거론됐다. 언론과 정치권은 국가보안법 대신 ‘실정법’(초경험적 성격을 지닌 자연법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성문법·관습법·판례법 등이 이에 속함)을 위반했기 때문에 처벌은 당연하다는 식의 오도된 논리를 펴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유엔인권이사회 등 국제인권기구가 1980년대부터 폐지를 권고해온 세계적인 악법이다. 이 때문에 한 시민단체 간사는 “진보진영이라는 곳에서조차 마치 송 교수에게 국가보안법을 없애는 일을 혼자 알아서 하라고 한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며 “언제는 세계적인 석학에다 양심적인 민족지성을 만들어놨다가 이제 와서는 뒤통수를 친 인물로 폄하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가장 황당한 장면은 9월30일 연출됐다. 민주화기념사업회가 연 심포지엄에서 기조발제를 하기로 예정돼 있던 송 교수는 주최쪽의 만류로 발제를 하지 못하고 행사가 끝날 무렵 잠깐 참석할 수 있었다. 뒤풀이 자리에서 그는 ‘대한민국 만세’ 삼창을 강요당했다.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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