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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대청소’ 작전? 고용허가제 시행 앞두고 강제출국에 떨어… 임금체불과 퇴직금 문제로 고통의 나날
“한국인보다 조금 받고 더 힘들게 일했는데, 이제 와서 나가라니요.” “퇴직금도 안 주고, 두달 밀린 월급도 못 준대요. 그거 받기 전에는 못 나가요.” 지난 10월26일 오후, 경기 안산시 원곡동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열린 긴급회의에서 70여명의 이주노동자 대표들은 저마다 분노와 한탄의 목소리를 토해내고 있었다.
보증금 떼먹는 집주인들
이들은 4년 이상 한국에 체류한 이주노동자들로, 내년 8월 고용허가제 시행을 앞두고 정부가 적극적인 ‘해소’에 나선 불법체류자들이다. 4년 이상 국내에 체류한 이주노동자들은 지난 7월31일 국회에서 통과한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고용허가제)에 따라 11월15일까지 한국을 떠나야 한다.
이번 고용허가제는 저임금과 인권침해로 지탄받던 산업연수생 제도를 폐지하라는 이주노동자 단체의 끊임없는 요구로 관철됐다. 내년 8월부터 고용허가제가 실시되면 이주노동자들은 3년 동안 합법적 취업을 할 수 있으며, 국내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노동3권 등 기본적 권리가 보장된다. 하지만 정부가 제도의 본격 시행을 위해 우선 국내 불법체류 대상자를 ‘소탕’하거나 일시 출국시키는 방법을 택하면서, 많은 불법체류자들이 불이익을 당하거나 ‘일시 잠적’하는 등 갖가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이주노동자 단체에 들어오는 상담의 대부분은 임금체불과 퇴직금 문제다. 일부 기업주들이 4년 이상 체류자들이 다음달 15일까지 출국하지 않으면 단속대상이 된다는 점을 악용해, 고의로 임금을 체불하거나 퇴직금을 주지 않는 것이다. 6년 전 한국에 들어온 방글라데시인 샨투(50·가명)는 체불임금 480만원을 받지 못해 상담소를 찾았다. 얼마 전까지 인천의 한 가구공장에서 2년간 일했지만,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다섯달치 임금을 받지 못했다. “사장님이 돈 없다고 하면서 요즘은 회사도 안 나와요. 기다리라는 말만 하고…. 우리 공장에 (강제출국) 대상자가 4명 있는데, 다 월급 못 받고 있어요.” 샨투는 “불법체류자 단속이 시작된다고 해서 밖에 나가기도 겁이 난다”면서도 “밀린 월급을 받기 전에는 절대로 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임대주택의 주인들이 계약기간이 남았다는 이유로 월세를 미리 떼고 보증금 잔금을 주거나, 아예 보증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리푸(38)는 이번에 5년간의 한국 생활을 접기로 마음먹었지만, 계약기간이 5개월 남았다며 보증금을 주지 않는 집주인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집주인이 “집에 들어올 사람을 직접 찾아내든지 아니면 새로운 사람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라”며 버티고 있는 때문이다. 리푸는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다”며 “집주인 생각을 뻔히 알면서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너무 화가 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사업주들도 공장 가동 중단 위기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주들도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4년 이상 체류한 이주노동자들은 일에 숙련돼 있어 대부분 공장에서 중간관리자 역할을 한다. 또 한국어도 잘해 ‘초보’ 외국인 노동자들과 기업주간 통역이나 중재자 역할을 하며 공장의 ‘기둥’ 노릇을 하는 경우가 많다. 안산에서 자동차 부품공장을 운영하는 ㄱ(44)씨는 요즘 잠이 오지 않는다고 털어놓는다. 고용인 10명 중 4명이 강제출국 대상인데, 이들이 그만두면 공장 가동이 사실상 중단되기 때문이다. “일이 힘들고 몸도 지저분해지니까 한국인들은 잘 안 와요. 사람 구하기가 어렵죠. 우리는 일의 특성상 한명만 없어도 라인이 돌아가지 않는데, 한꺼번에 4명이 나가면 우리는 공장 문 닫아야 돼요.” ㄱ씨는 “고용허가제가 실시된다고 해서 좋아했는데, 오히려 영세업체들을 말려 죽이고 있다”며 “주변 공장들도 다들 비상사태”라고 말했다. 선택적 합법화의 대상이 된 3년 이상 4년 미만의 이주노동자들은 또 다른 문제에 부닥쳐 있다. 고용허가제는 2003년 3월31일을 기준으로 국내 체류기간이 3~4년인 이주노동자의 경우 일시 출국을 한 뒤 3개월 이내에 재입국하도록 하고 있다. 재입국 뒤 일할 수 있는 기간도 국내 체류기간을 합쳐 5년으로 제한해, 잔여기간이 몇 개월에 불과한 이들은 출국을 꺼리는 것이다. 게다가 합법화가 허용되는 업종이 300인 미만 중소제조업과 연근해 어업, 농축산업뿐이고, 서비스 분야 6개와 건설업은 외국 국적의 동포에게만 허용해 합법화 신청률도 매우 저조하다. 지난 2000년 4월 한국에 들어온 사비르(32·가명)는 건설현장에서 목수로 일한다. 2003년 3월31일 현재 체류기간이 3년1개월이어서 ‘선택적 합법화’의 대상이지만, 이번에 등록을 하지 않을 작정이다. 누릭은 “나갔다가 다시 한국에 돌아올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며 “게다가 이주노동자가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에 합법화 신청을 하는 것이 오히려 손해”라고 말했다. 합법화 등록을 위해 노동조건 후퇴를 감수하는 일도 속출하고 있다. 등록절차를 밟기 위해서는 고용확인신고서와 사업자등록증, 표준근로계약서, 기간이 끝나면 자진 출국하겠다는 서약서 등의 자료를 준비해야 한다. 일부 사업주는 확인서 발급을 노동조건을 후퇴시키는 계기로 삼는다. 고용확인서를 써주는 대신 임금을 절반 이상 깎아버리는 것이다. 또 이주노동자들에게 고용확인증을 써주겠다며 사기행각을 벌이는 브로커가 활개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노동부는 지난 10월24일부터 등록을 먼저 하고 확인증을 나중에 제출하도록 하는 ‘선 등록, 후 확인’ 제도를 실시하고 있지만, 26일 현재 등록률은 63.6%로 여전히 저조한 형편이다.
4년 이상 체류자 재입국 보장해야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박천응 소장은 “4년 이상 된 불법체류자들은 고용허가제를 위해 싸워왔고,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1년 이상 월급도 안 받고 일한 이들도 상당수”라며 “이들이 본국에 돌아간 뒤 다시 취업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고, 최우선 고용대상자로 선정해야 한다”며 “3년 이상 4년 미만의 체류자들의 경우에도 본국 방문 뒤 재입국을 보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7년 동안 엄마, 아빠 한번도 못 봤어요. 저도 집에 가고 싶어요. 하지만 나 아니면 집에 돈 벌 사람이 없어요. 조금만 더 벌어서 여동생들 결혼시키면 돌아갈 거예요.” 스리랑카에서 온 로샴(29)의 말처럼, 이들에게는 불법체류자라는 불안한 신분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현실이 있다. 불법체류자는 세계 어느 나라에나 존재한다. 불공정한 세계 경제와 개발의 틈이 해소되지 않는 한,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찾아나서는 이들 ‘불법체류자’들의 이동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후려치고 밀어내는’ 정책만이 능사는 아니다.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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