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추적 ] 2003년10월01일 제478호 

약한 달러, 강한 위협

미국 환율정책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한국경제… 동아시아 협조체제 통한 충격 완화 절실

지난 9월20일 두바이에서 개최된 선진7개국(G7)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담에서는 미국의 약한 달러정책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외환 당국의 외환시장 개입을 통한 환율의 인위적 방어보다는 시장을 통한 환율결정을 강조하는 쪽으로 합의가 모아졌다. 이 회담으로 약한 달러 기조가 더욱 공고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1995년 중반에 실시된 강한 달러정책이 8년 만에 막을 내리면서 동아시아는 강한 달러일 때와는 정반대의 디플레 압력과 경기둔화 우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일본은 제반 경제지표가 모처럼 2분기 연속 호조를 보여 지난 10여년 동안의 장기불황에 종지부를 찍고 드디어 본격적인 경기회복세로 돌입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약한 달러에 따른 엔화 강세로 이런 기대가 물거품이 되지 않을지 노심초사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사진/ 미국이 주도하는 약한 달러가 한국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지난 9월20일 두바이에서 열린 선진7개국(G7)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담은 약한 달러에 힘을 실어주었다.(GAMMA)


위안화 약세 맞물려 최대 피해자 될 수도

한국경제도 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안팎의 정치경제적 불안요소가 좀처럼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급락하면서 경기회복 전망은 더 요원해 보인다. 문제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마땅한 정책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원·엔 동조화에 따라 엔화강세가 원화 강세로 반영되는 상황인데, 엎친 데 덥친 격으로 9월23일 워싱턴 한-미 재계회의에서는 위안화 20% 절상을 전제로 한 원화 10% 절상 발언이 나왔다. 이처럼 미국이 위안화 절상과 함께 원화절상마저 들먹이고 있어 당분간 원화절상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과 일본의 집요한 위안화 평가절상 요구에 눈도 깜짝하지 않고 있어 자칫 한국이 약한 달러정책의 최대 피해자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보통신산업의 호황과 경제의 금융화로 ‘신경제’를 구가한 미국은 2000년 정보기술(IT) 및 주식거품의 붕괴로 ‘호시절’을 마감했다. 부시 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 아래 군사화에 박차를 가하고 감세를 통해 경기회복을 도모했다. 하지만 그 성과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이라크전쟁과 전후 복구를 위한 정부지출 증대와 고소득층을 겨냥한 감세, 주식시장의 부진에 따른 자본이득세의 감소 등으로 재정적자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또한 과거 7∼8년 동안의 강한 달러정책의 여파로 2003년 2분기 경상수지 적자액만 1387억달러에 달해 올해에는 적자액이 5천억달러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선을 노리는 부시 정부는 강한 달러정책의 희생자인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등 제조업계의 불만과 강한 달러정책 시정 요구를 계속 외면할 수만은 없다. 적어도 내년 말 미국 대통령선거 때까지는 약한 달러정책 기조가 계속 유지될 것으로 예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두바이 회담에서 미국이 중국에 대해 위안화의 평가절상과 함께 시장을 반영하는 유연한 환율제도의 채택을 촉구하고 나선 것은 약한 달러정책의 효과를 조기에 극대화하려는 부시 정부의 정책적 계산과 무관하지 않다. 이제 이를 계기로 미국의 평가절상 요구가 동아시아 국가들 전체로 확산될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 환율변동에 대한 동아시아의 공동 전선이 절실하다. 지난 9월26일 급격한 원-달러 환율 변동으로 주가가 곤두박질쳤다(이코노미21 박미향).


미국은 대미 무역수지에서 최대 흑자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 일본, 대만, 한국 등 극동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에 무역흑자 규모보다 훨씬 더 많은 포트폴리오투자(주로 미 재무성증권에 투자)를 해온 결과, 국채가격 하락(금리상승)과 주가하락 압력을 억제할 수 있었다. 극동아시아 국가들이 무역흑자 규모에 비해 훨씬 많은 액수의 증권투자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가지고 환율방어를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국가들이 자국통화의 평가절상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서 끊임없이 달러를 사들임에 따라 외환보유고가 계속 늘고, 이것이 다시 대미 포트폴리오투자로 이어졌다. 극동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의 쌍둥이 적자와 저축부족을 보전해줌으로써 미국의 금리상승과 주가하락 압력을 차단해준 것이다.

그러나 약한 달러 기조가 계속될 경우 과거처럼 극동의 대미 흑자국들로부터 포트폴리오 투자자금이 미국으로 원활하게 유입되리란 보장은 없다. 약한 달러정책으로 이들 나라의 대미 포트폴리오투자가 크게 감소할 경우 달러화 시세의 하락과 대미 증권투자의 감소는 불가피하고, 이에 따라 과도한 저금리 및 주가부양 체제가 송두리째 허물어질 수 있다. 금융·외환 시장의 근원적인 불안정성이 금융 주도 자본주의의 최대 아킬레스건인 이상, 약한 달러정책은 곡예사의 외줄타기만큼이나 위험천만하고 불안한 것이다.

저금리·주가부양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이번 두바이 회담에서 일본의 엔고 저지 압력에 대한 외부의 견제가 알려지면서 엔·달러환율은 달러당 110엔대까지 곤두박질쳤다. 사실 일본은 경제의 펀더멘털상 일찍부터 엔화 강세를 수용했어야 함에도 부실채권 처리 지연에 따른 디플레 압력을 핑계로 끊임없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매입하여 엔고 압력을 저지해왔다. 제로금리 수준에다 재정적자가 심각해 정책 당국이 구사할 수 있는 대내적 경기부양책은 거의 고갈된 상태일 뿐만 아니라 기업·금융 구조조정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워 일본은 자주 엔화 약세에 기대어온 것이다.


사진/ 장기불황에서 벗어날 기미를 보였던 일본 경제도 앞날이 불투명하다.(GAMMA)


미국의 약한 달러정책이 연초부터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자, 일본은 한편으로 달러매입 개입을 통해 엔고를 최대한 저지하고자 하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엔고 압력을 무마하기 위해 위안화의 과도한 저평가를 문제 삼고 나섰다. 때마침 미국이 위안화의 평가절상을 요구하자 뒤늦게 일본이 여기에 가세하면서 중국은 미-일 공조에 기초한 파상적인 위안화 절상 공세에 처하게 되었다. 하지만 위안화를 미 달러에 사실상 페그하는 일종의 고정환율제(달러당 8.3위안)를 채택해온 중국은 최근 미국과 일본의 절상 공세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급격하고 대폭적인 평가절상이 부실기업 양산과 은행의 부실채권 누적을 야기함으로써 디플레와 금융교란의 악순환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중국은 위안화의 평가절상에 매우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중국이 지금의 달러페그제와 달러당 8.3위안의 환율 수준을 계속 고수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장기적으로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금융서비스시장 개방(2006년)과 아세안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2010년)의 진척 정도에 연동시켜 환율제도를 개혁할 것으로 보인다. 그 방안으로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권고하는 자유변동환율제(free floating)보다는 주요 무역상대국의 통화로 구성되는 통화바스켓에 위안화를 페그하는 통화바스켓페그제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제통화기금 위기 전에는 우리 경제가 엔·달러환율 그 자체에 큰 영향을 받았지만 2000년 이후 소위 원·엔 동조화 경향이 나타나면서 엔·달러환율과 원·달러환율의 상대적인 절상폭이 더 중요해졌다. 게다가 최근에는 달러에 페그돼 있는 위안화의 시세가 우리에게 큰 중요성을 띠기 시작했다. 최근 약한 달러정책이 우리에게 곤혹스러운 이유는 달러가 약세가 되면 중국의 위안화가 덩달아 약세 통화가 되어 우리의 수출기반에 큰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 체질 개선이 당장 어렵다면…

해결책은 산업구조 고도화로 환율변동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경제 체질을 뿌리내리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40∼50년간의 산업화 결과 우리 경제는 한·미·중·일·아시아닉스·아세안의 중층적인 분업구조와 동아시아 달러본위제 속에 깊이 통합됨으로써 단기간에 이런 구조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현재 동아시아 경제에서 구조적 불균형과 환율불안의 진원지인 미국과 일본이 솔선수범해서 문제해결에 나서지 않는 한 더욱 그러하다.

미국은 환율조작이 아니라 거시경제 시스템의 조정을 통해 과도한 대외 불균형을 해소함과 동시에 달러 거품을 걷어내어야 하며, 일본은 경제의 펀더멘털을 반영해서 엔화 강세를 받아들여야 한다. 달러본위제에 깊이 연계되어 있는 한국, 중국 등 다른 동아시아국가들은 각자 자국에 유리한 환율을 유지하려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과도한 환율경쟁을 완화할 수 있는 지역 차원의 환율협조 체제를 모색해야 한다. 21세기 동아시아가 세계 경제에서 새로운 경제중심지로 재부상할 수 있을지 여부는 동아시아의 환율협조 체제의 구축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창환 |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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