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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 귀환한 ‘분단의 경계인’ 조선노동당 입당서 작성 사실 밝힌 송두율 교수… 현실 감안해 기소하지 않을 듯
“우리는 다른 민족도 아닌 같은 민족을 만나면 반쪽짜리 조국의 배신자가 될 수밖에 없는 기막힌 시대에 살고 있다.” 송두율(59·독일 뮌스터대) 교수는 1991년 펴낸 저서 <전환기의 시대와 민족지성>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이같은 현실을 ‘희극적 비극’이라고 규정했다. 12년이 흐른 지금, 그는 이 ‘희극적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가고 있다. 9월22일 입국한 뒤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에서 4일 동안 강도 높은 출퇴근 조사를 받은 송 교수의 형사처벌 여부가 뜨거운 감자가 됐다. 특히 조사과정에서 그가 조선노동당에 입당한 사실이 새롭게 드러남으로써 논란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첫 방북 때 통과의례로 입당서 작성”
송 교수는 국정원 조사과정에서 “72년 남쪽에서 유신체제가 출범하고 73년 독일에서 민주사회건설협의회가 발족된 때를 전후해 북한을 처음 방문하면서 입국 직후 조선노동당 입당서를 ‘통과의례’ 정도로 알고 썼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 교수는 또 “입당서를 쓴 것은, 스스로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상 또는 정치적 입장을 나타내는 행위와는 관련이 없다”는 뜻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변호인인 김형태 변호사는 9월22일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그 배경을 설명했다. “유신 이후 남한이라는 나라가 형편없게 느껴져 처음 북한에 들어갔다. 당시 많은 해외 지식인들이 방북했었다. 그런 케이스의 하나로 방북했던 것이다. 지금 남한이 해외 인사들을 초청하는 것처럼, 북한도 당시 많은 인사들을 초청했다. 당시 방북했던 인사들은 모두 (입당서를) 썼다. 유신체제에 대한 반발심으로 방북했던 것이다.” 김 변호사는 또 “(입당서를 쓴 뒤에도) 당원이라는 의식이 전혀 없었다”면서 “아무 개념 없이 썼기 때문에 이 시점에 와서 문제가 된다면 당원으로 남지 않겠다는 뜻을 서면으로 국정원에 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대신 △94년 방북 당시 김철수라는 가명을 사용한 사실이 있다는 점 △73년 조선노동당의 입당서류를 작성한 사실이 있다는 점 △방북과정에서 비행기 삯 등을 보조받은 사실이 있다는 점 등에 대해 송 교수 본인한테서 이를 인정하는 진술을 확보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송 교수는 국정원이 추궁하기 이전에 이같은 사실들을 모두 진술했다고 한다.
정치국원 가능성 희박… 탈당 시점 등 검토
반북 이데올로기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 비춰볼 때 송 교수의 노동당 가입 사실 인정이 불러올 여파는 만만찮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남이냐 북이냐를 물으면서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분단체제는 비인간적”이라며 ‘경계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해온 송 교수 자신의 처지가 다소 모호해진 측면이 있다. “양자택일의 이분법이야말로 이것으로부터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고, 이것은 악마적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우리를 계속 혼란으로만 내몰 뿐”(<계몽과 해방>에서)이라고 그는 주장해왔다. 수구·보수 세력은 “그럴 줄 알았다”며 물 만난 고기마냥 실정법에 따른 원칙적인 처벌을 강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송 교수의 노동당 가입 사실이 곧바로 형사처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가입이 이뤄진 때가 30년 전이어서 공소시효가 끝난 것으로 판단되면 국내법적인 논리로도 처벌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해서는 탈당했는지 여부와 탈당 시점이 중요한 기준이 될 전망이다. 정부는 송 교수에 대한 국정원의 조사가 마무리됨에 따라 송 교수의 처리 방향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 정부는 일단 송 교수가 검찰 조사 등 남아 있는 조사 절차를 모두 마치게 되면 3가지 처리 방향, 즉 구속·추방·공소보류 중 하나를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구속을 제외한 추방이나 공소보류 중 하나로 정리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국내 여론 △국내 법적용과의 형평성 △독일과의 외교관계 △국제인권기준과의 비교 검토 △국제사회의 여론 등을 살펴 최종 결론을 내린다는 방침이다. 송 교수 처리가 순풍을 탈 것이라는 점은 송 교수가 국정원에 낸 문서로도 확인된다. ‘나의 입장’이라는 제목으로 9월22일 국정원에 제출된 이 문서에는 △더 이상 (조선노동당) 당원이 아니다 △이것이 문제가 돼 한국 민주화운동에 누가 된다면 굉장히 미안하고 국민들에게도 사과한다 △그동안 40년 동안 독일에 있으면서 남한의 실정법을 염두에 두지 않고 살았는데, 이제는 한국의 실정법을 염두에 두고 살 것이다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송 교수가 쓴 문서는, 비록 제목이 그렇지 않더라도, 내용적으로는 ‘준법서약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조사와 처리 방향을 결정할 실무 주체인 검찰 역시 이같은 점을 깊이 고려하고 있다. 스스로 입국해 강도 높은 조사를 받고 준법서약서에 해당하는 문서까지 낸 인사에 대해 형사처벌까지 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여론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의 실정법 염두에 두고 살겠다”
한편 준법서약서와 관련해 송 교수가 이를 작성한 배경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는 그동안 크게 3가지 이유를 들어 이를 거부해왔다. △역사의 진보를 추동하는 힘은 사상인데 사상을 과거의 틀에 가둬놓고 사회의 진보를 말할 수 없다 △이것은 과거의 반성만이 아니라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도 준법이라는 틀에 가두어놓는 미래진행형의 관행이다 △분단시대를 온몸으로 거부하고 살아온 많은 분에게 내가 최소한으로 표시할 수 있는 연대감의 표현이다 등이었다. 송 교수 자신의 입장은 형사처벌 과정이 정리된 뒤에야 나올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는 <21세기와의 대화>라는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미래를 전망하는 문제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불안도 더 커지게 마련이고 이에 따라 우리는 관습적 사고에 더욱 매달리게 된다. 이것이 바로 교조주의적 사고와 행동양식이다.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으면 큰 병이 된다’(參禪者 不疑言句 是爲大病)는 불가의 말처럼 미래의 전망이 어두울수록 지금까지 품었던 사고와 보였던 행동에 대해서 더 큰 의심을 해보아야 한다.”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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