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국정원이 ‘테러’할라 테러방지법 제정 재추진으로 시민사회 위협… 개혁보다는 세불리기에 급급하다는 지적
조직이론에 ‘파킨슨의 법칙’이라는 용어가 있다. 공무원 수는 실제 업무량에 관계없이 계속 늘어난다는 것인데, 관료조직의 속성상 끊임없이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내고 이를 관리하기 위해 또다시 일거리를 만들어낸다는 법칙이다. 냉전 종식과 민주화 이행 이후 점점 더 할일이 없어지면서 어느덧 조직축소 압력까지 받고 있는 국가정보원도 ‘파킨슨의 법칙’을 따르고 있는 것인가. 지난해 시민사회의 거센 반대에 부딪쳐 좌초됐던 테러방지법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자, 조직축소 여론에 시달리고 있는 국정원이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나선 것이냐는 ‘뼈 있는 농담’이 시민사회에 떠돌고 있다.
시민단체 방문해 수정안 설명회 가져
국정원은 이달 초 대테러과장 등 관계자 5명이 참여연대를 방문해 민주당이 낸 테러방지법 수정안 설명회를 가졌다. 10월 안에 테러방지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목표 아래 부산하게 움직이는 게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물론 이번에 마련된 수정안은 지난해 큰 반발을 산 원안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상당 부분 고쳤다. 인권침해 논란을 빚은 ‘테러’와 ‘테러단체’의 개념을 좀더 명확히 했고, 군병력의 불심검문과 보호조처 등 권한 부여에 관한 규정을 삭제했다. 또 테러범죄와 단체구성, 불고지죄 등에 관한 벌칙 조항도 모두 없앴다.
특히 이번 법안은 순수한 테러 ‘방지’를 위한 법률이라기보다는 사실상 대테러센터라는 특정 ‘조직’의 역할과 권한을 규정한 법률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법안에서 ‘대테러센터’는 △테러 징후의 탐지·경보 △테러 관련 국내외 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 △대테러활동의 기획, 지도 및 조정 △분야별 테러사건대책본부에 대한 지원 △외국 정보기관과의 테러 관련 정보협력 등을 수행하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국가안전보장회의 산하의 위기관리센터가 이미 각종 국가위기 예방 및 관리체계에 관한 기획 및 조정 업무, 긴급사태 발생시 초기 조처, 국가 재난·재해 관리체계의 종합 조정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비슷한 기능의 조직이 또 하나 생기는 셈이다. 장주영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변호사는 “국정원장 소속하에 대테러센터를 둔다는 것은 광범위한 대테러활동을 정보기관이 주도하면서, 관계기관에 설치된 ‘테러사건대책본부’를 통해 관련 행정부처를 장악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 점이 국정원이 테러방지법안 통과에 심혈을 기울이는 실질적인 이유”라고 분석했다. ‘대테러센터’의 공무원은 테러와 관련된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행위 등에 대해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 즉 수사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대테러센터의 조직과 정원은 공개하지 않을 수 있어 사실상 ‘비밀조직’으로 운영된다. 이는 수사권을 갖는 경찰기능을 수행하고, 비상시에는 국민의 권리까지 제한할 수 있는 막강한 조직이 아무런 견제장치 없이 비밀리에 운영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함께 대테러센터의 장인 국정원장이 시설 보호 및 경비를 위해 군병력을 동원할 수 있다는 점도 위헌 소지가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국내 치안유지 활동에 군대를 동원하는 것은 계엄하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것이 시민사회의 판단이다. 국정원은 “현재 14개 대테러 유관기관이 활동하고 있지만, 소관사항에 따른 기능을 독립적으로 수행할 뿐, 테러에 이용될 여지가 있는 위험물질 안전관리나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보호 등의 업무를 전담해 처리하는 기관은 없다”며 “게다가 우리가 이라크전 지원국가이기 때문에 테러 가능성은 상존해 있고, 국제사회도 반테러법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국정원은 이번 법안이 민주당이 자체적으로 낸 수정안에 불과하고, 국정원은 이를 관망할 뿐이라고 항변한다. 테러 방지 필요성에 따라 국회가 알아서 법안 제정을 재추진하는 것일 뿐 국정원은 개입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민주당 함승희 의원실은 “국정원과 상당 부분 협의를 거친 법안”이라고 일축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국정원이 개혁은커녕 권한 강화에만 몰두하면서 테러방지법 제정을 또다시 추진하고 있다며 거세게 반발하였다. 테러방지법은 일부 조항을 삭제해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법안 자체가 폐기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부에서는 국정원의 테러방지법에 대한 ‘애정’을 ‘조직보위 투쟁’, 또는 국정원 직원의 ‘사회보장법안’이라며 냉소를 보내고 있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국정원 개혁이 과제로 제기되자 조직축소에 대한 불안감이 테러방지법을 통한 권한 강화 기도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특히 고영구 국정원장 임명과정에서 한나라당이 아예 국정원을 해외정보만 담당하도록 축소·개편하자는 의견을 내자 국정원의 초조함이 더욱 커졌다는 분석이다.
“테러 가능성 때문에 입법 불가피”
이계수 울산대 법학과 교수는 “국정원은 ‘대테러센터’가 설치되면 조직 축소 또는 개혁 요구로부터 한발 비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 때문에 시민사회가 반대하는데도 국정원이 이 법안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100여개 시민사회단체들은 ‘테러방지법 제정 반대 공동행동’을 구성해 테러방지법에 대한 긴급토론회를 여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들어갔다. 지난해 테러방지법 제정중단 권고를 했던 국가인권위원회도 법안에 대한 내부 검토를 진행 중이다. 국가정보원이 이름 그대로 ‘정보’ 중심기관으로 거듭날지, 아니면 테러방지법을 등에 업은 ‘테러단체’라는 오명을 쓸지 지켜볼 일이다.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