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ww.hani.co.kr/h21 |
|
| 기사섹션 : 이슈추적 | 등록 2003.09.05(금) 제475호 |
|
[이슈추적] 배신하지 마라 vs 오해하지 마라 정면으로 맞선 노무현 대통령과 노동계… “청와대 노동참모들이 문제다”지적도
노(盧)의 배신인가, 노(勞)의 오해인가. 잇따른 파업사태를 계기로 노무현 대통령과 노동계가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출범 초기에 재계로부터 ‘친노동계 정권’이라는 평가를 받은 노무현 정권이 노동계를 향해 잇따른 강경 발언을 쏟아내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최근 “민주노총 활동은 정당성이 없다”며 노동단체 지도부를 정면으로 비판하는가 하면, “지금 같은 노동운동 갖고는 노동운동을 지속하기 어렵다”며 노동계 전반을 강도 높게 비난하고 나섰다. 이에 맞서 노동계는 “노동운동을 어설프게 아는 노 대통령이 오히려 노동자를 탄압한다”며 노 대통령에게 날을 세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노 정권이 자신의 지지 기반이었던 노동계와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 임기 내내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정말 노동자를 알긴 아십니까?
노 대통령은 과연 노동자를 배신했는가. 노동단체들은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노 대통령의 노동관에 변화가 생겼다는 데 동의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송원재 대변인은 “적어도 취임 초기에 내세운 대화와 타협의 원칙은 크게 바뀌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화물연대나 교육정보화시스템(NEIS), 철도노조 파업 등은 모두 정부가 원인을 제공했는데 오히려 정부가 그 책임을 노동계에 떠넘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 화물연대나 NEIS, 철도노조 파업은 정부가 지난해와 올 초 노조와 합의한 사항들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노조의 대화 요구에 성실하게 응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송 대변인은 이에 대해 “노 정권이 자본과 수구세력의 목소리를 지나치게 의식해서 나온 결과”라고 분석했다. 노 대통령이 취임 초기에 보수 언론들과 타협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조선·중앙·동아일보 등 보수언론들은 노 대통령의 ‘강경 발언’이 나온 뒤, “불법 집단행동에 정면 대응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이례적(!)으로 노 대통령을 칭찬하고 나섰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한발 더 나간다. 두 단체는 아예 노 대통령의 노동문제에 대한 인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노 대통령이 과연 노동관을 갖고 있었느냐는, 더 본질적인 의문이다. 민주노총은 지난 8월27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노 대통령이) 노동문제에 관여한 경험이래야 1987년 6월항쟁 직후 불과 몇달이었고, 문재인 민정수석과 함께한 노동사건 담당 변호사 생활 기간은 기업을 위한 변호인 활동을 겸한 세월이었다”며 “노동운동에 대한 이해수준 자체가 엉뚱하기 짝이 없다”고 깎아내렸다. 손낙구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1987년 대우조선 이석규 열사 장례식 때 ‘제3자 개입’ 혐의로 구속된 게 노 대통령의 노동운동 경험의 전부”라며 “지금으로서는 노 대통령이 애초 노동정책에 대한 소신이 없었다고 봐야 한다”고 혹평했다. 손 실장은 “화물연대 김종인 위원장은 ‘노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에 한 강연을 듣고 감명을 받았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던 사람”이라며 “그가 지금 느끼고 있을 배신감을 청와대가 상상이나 해봤겠느냐”라고 꼬집었다. 한국노총 이정식 대회협력본부장도 “노 대통령은 노동문제에 대해 아는 것도 많이 없으면서 그동안 아는 척했다”며 “예측 가능한 지도자여야 노동운동도 발전하는데, 참 난감하다”고 말했다.
청와대 “초기 정책기조 변하지 않았다”
양대 노총은 노 대통령의 노동정책을 보좌하는 참모진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손 실장은 “청와대 참모들이 대부분 노동운동 현장을 일찍 떠난 사람들이어서 최근의 노동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며 “박태주 박사(전 청와대노동개혁TF 팀장)가 그나마 현장 경험이 있는 참모였는데, 새만금 헬기 사건으로 쫓겨나는 바람에 청와대의 감각이 크게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청와대 참모들의 면면을 보면 손 실장의 지적이 틀린 말은 아니다. 박 전 팀장의 후임인 권재철 팀장은 전국사무금융노조연맹 부위원장과 민주노총 중앙위원을 역임했지만, 1997년 대선 때 DJ캠프에 합류하면서 노동운동 현장을 떠났다. 김남수 행정관도 한국야쿠르트 노조위원장 출신이지만 일찌감치 노 대통령을 따라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았고, 이수원 행정관은 현대그룹노동조합협의회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지만 1990년대 후반 시민단체로 둥지를 옮겼다. 이정식 본부장은 “현재 노 대통령의 노동 참모들은 주류 노동운동에서 이탈해 있던 사람들”이라며 “그들은 생존권 투쟁을 벌인 1980년대 노동운동을 아직도 생각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노동계가 오해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노 대통령은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노동계에 섭섭한 감정을 갖고 있다고 전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최근 노 대통령의 발언은 노동계에 대한 애정에서 나오는 쓴소리로 봐야 한다”며 “수구세력의 공격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노동계가 도와줘야 하는데, 오히려 노동계가 발목을 잡고 있다고 대통령은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노 대통령의 발언은 그것이 어느 장소에서 누구와 만났을 때 나온 것인지 잘 파악해야 한다”며 “발언은 다소 강경한 경향이 있지만 출범 초기의 정책 기조는 변한 게 없다”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참모진에 대한 노동계의 문제 제기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고 있다. 청와대의 또 다른 관계자는 “노동현장 경험이 많은가 적은가라는 시각으로 접근해서는 곤란하다”며 “노동운동에 대한 철학과 원칙을 갖고 있느냐는 게 중요한데, 현 참모들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강한 소신을 갖고 있다”고 반박했다. 노동연구원의 배규식 박사는 “노 대통령이 노동계에 대해 강경한 발언을 했지만, 실제 정책은 그렇게 가고 있지 않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며 “중요한 것은 노 대통령과 노동계의 갈등이 지속되면 그 피해는 양쪽 모두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