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추적 ] 2003년09월25일 제477호 

파병의 늪, 신중하게 건넌다

1차 파병 때와 달리 국민여론 수렴에 나선 정부…정무라인은 파병 반대, 외교라인은 파병 지지

정부가 이라크전 추가 파병을 놓고 지난 3~4월의 1차 파병 때와 달리 일단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노무현 대통령의 발걸음에서 나름의 ‘묵직함’이 엿보인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옳고 그름에 대한 우리 국민적 인식”(9월17일 광주·전남 언론인 간담회)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국민들도… 판단과 선택을 다르게 할 수 있는 전략적 사고 능력이 있다”며 ‘국민의 힘’을 존중했다.

“신속한 결단은 국익에 도움 안 돼”


사진/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적 인식.” 9월17일 열린 노무현 대통령과 광주·전남 언론인 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노 대통령.(청와대사진기자단)


그는 이어 “한국의 위상이 전 세계 국민들에게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며 “그 다음에 아랍권과 그 이후의 관계들을 전부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섣부른 결정을 했다가 자칫 미국 부시 행정부의 ‘애완견’으로 비칠 가능성, 따라서 국제사회에서 존경을 잃을 가능성을 걱정하는 이야기로 읽혔다.

그는 또한 “일부 언론에서 빨리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라 하는데 결단을 내리기 전에 끝까지 판단해야 할 상황이 아주 많다”며 “먼저 깃발을 든다고 반드시 이득이 되는 것만은 아니며, 또 앞장서서 제일 먼저 ‘우리는 안 돼’하고 선언하는 것이 국익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신속한 결단을 앞장서서 촉구한 것은 <조선일보> 사설이었으며, 한나라당도 비슷한 입장을 취해왔다. 노 대통령이 자신과 정치적으로 대척점에 선 세력들의 의도를 나름대로 꿰뚫은 셈이다.

정부는 이어 추가 파병 관련 정보를 가능한 한 적시에 공개할 방침이라고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이 9월19일 밝혔다. 국민의 알 권리 충족과 동시에 국민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공론의 장’을 정부가 마련할 뜻을 밝힌 셈이다. 정부가 24일부터 이라크 현지 조사단을 보내는 것도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다. 12명의 조사단에는 국방부·외교부 관리들 외에 ‘대미 외교의 자율성 강화론자’인 박건영 가톨릭대 교수가 포함됐다.

정부의 이런 자세에 힘입어 우리 사회에서는 나름의 토론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파병 찬성론자들도 무조건적 파병보다는 “유엔 다국적군 승인 결의를 거친 뒤…”라고 주장하였으며, 전투병 파병 반대론 진영에선 △“유엔 결의 이후 비전투병을 인도적 차원에서…”(장영달 국회 국방위원장) △“민간지원단을 보내 이라크 부흥 위주로 기여해야…”(경실련 통일협회) 등의 견해들이 쏟아지고 있다.

유엔 결의 이후로 결정 늦춰질 전망

외교적 약소국은 늘 줄타기 외교의 묘책을 찾아야 한다는 점에서 최근의 백가쟁명 양상은 일단 바람직하다. 조선조 광해군이 명·청 교체기에 명의 요청을 받고 지원병을 파견하면서도 청군에게 거짓 투항하도록 강홍립 장군에게 밀지를 내렸던 방략도 이런 과정을 거쳐 나온 것이었다.

어쨌든 정부는 9월26일 대통령 주재 외교안보 장관회의를 열어 상황을 점검할 계획이다. 그러나 미국 주도의 유엔결의가 이달 말이나 다음달 초에 처리될 예정이기 때문에 정부의 결정도 최소한 그 뒤로 늦춰질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최종 향배를 두고 청와대 참모들 사이에서도 엇갈리는 기류가 감지된다. 정무라인쪽에는 “전투병 파병 불가” 견해가 우세하다. 파병 반대 여론을 설득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며 기왕의 지지층 이반 기류에 기름을 끼얹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한 여권 고위관계자는 전했다.

반면에 직업 외교관을 주축으로 한 외교라인은 파병 불가피론이 여전히 우세하다. “만약 결의안이 안보리를 통과하게 되면 우리의 이라크 추가 파병 문제는 부담을 상당히 덜게 될 것”(반기문 청와대 외교보좌관 9월21일)이라는 발언이 이런 기류를 함축한다.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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