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추적 ] 2003년09월05일 제475호 

중국에 의한, 중국을 위한

6자회담의 실질적 주역으로 막전막후에서 맹활약… 절묘한 외교술로 북-미 접촉 이끌어 위상 강화

“이번 북핵 6자회담은 북한의 제의를 각국이 모두 받아들여 성사됐다.”

왕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지난 8월29일 베이징 궈지판뎬(국제반점)에서 사흘간의 베이징 북핵 6자회담 기자회견을 하면서 말미에 밝힌 말이다. 왕 부부장의 한마디는 6자회담의 개최 경위를 함축하고 있다. 6자회담은 ‘북의 제의’와 ‘중국 중재’의 합작품으로 평가된다. 중국의 역할은 회담 개최에 그치지 않았다. 주최국으로서 중국의 ‘막후 중재’는 회담 기간 동안 계속됐다. 6자회담의 최후 승리자는 중국이란 평가도 나온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8월28일 “중국은 6자회담으로 외교 강국의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6자회담으로 국제 무대에서 ‘주가’를 한껏 높였다. 회담 기간 동안 세계 언론의 관심은 베이징에 집중됐다.


사진/ 중국은 6자회담의 최후 승자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8월27일 중국 리자오싱 외교부 부장이 마련한 초청 만찬에 앞서 각국 대표단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연합)


국제 무대에서 중국 외교의 주가 드높여

중국은 첫 만남에서 후속 회담 개최 등 6개항 동의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중국 언론도 중국의 역할에 대한 자랑을 감추지 않고 있다. <신화통신> 등 중국 언론들은 개막 이전부터 북핵 회담에 대해 ‘광고용 애드벌룬’을 띄우기 시작했다. 중국이 국제 대회 특히 북핵처럼 민감한 문제에 대해 ‘예고 기사’까지 내보낸 것은 이례적으로 북핵 회담에 대한 중국의 관심과 의욕을 반영하는 것이다. 왕이 부부장은 26일에는 외신을 제외한 <신화통신> <중앙텔레비전> 등 5개 중국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 왕이 부부장은 인터뷰에서 회담에 임하는 중국의 입장과 전망을 밝혔고, 중국 언론들은 다음날 1면 국제면을 통틀어 대서특필했다. 중국 언론들의 보도는 회담기간 동안 주요 지면을 차지하면서 계속됐다. 중국 언론들은 29일 폐막일 왕이 부부장의 내외신 기자회견 내용 전문을 소개하면서 ‘북핵의 평화적인 해결을 위한 중대한 일보를 내디뎠다”고 자체 평가했다. 중국 언론은 매번 중국 앞에 주최국이란 뜻의 ‘둥다오주’(東道主)란 딱지를 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중국이 생색을 낼 만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중국은 지난 4월 3자회담 뒤 후속회담을 위해 쉴 틈 없는 노력을 해왔다. 실제 7월1~4일 왕이 외교부 부부장이 미국을 방문했고, 7월2~4일 다이빙궈 외교부 부부장이 러시아를 방문했다. 당시의 상황은 이렇게 정리된다. 북한 외무성은 3자회담 뒤인 5월24일 담화를 통해 “먼저 쌍무회담을 하고 미국이 제기하는 다자회담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중국은 이 틈을 파고들었다. 중국은 올 초부터 “회담 형식보다 내용”이라고 거듭 주장했으며 북한을 끊임없이 설득해왔다. 실제 중국은 지난 4월 3자회담을 통해 사실상의 ‘다자회담’을 치른 북한에 대해 ‘다자회담 속 양자회담’을 거듭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 왕이와 다이빙궈 부부장의 방미, 방러 기간이던 7월2일께 “북한은 4자 아니면 6자를 선호한다”면서 “일본이 낄 경우 북한을 지원할 러시아의 참가를 원한다”고 밝혔다. 이는 당시 중국이 북한과 조율을 끝내고 왕이와 다이빙궈를 미국과 러시아에 각각 파견한 것을 의미한다. 실제 왕이 부부장은 미국이 일본이 빠지는 ‘4자회담’에 난색을 표하고 ‘5자회담’을 들고 나오자 6자회담 카드를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다이빙궈 부부장은 7월14일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을 통해 ‘6자회담 속 양자회담’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왕이 부부장은 8월7~9일 북한을 다시 방문했고, 11일 로슈코프 러시아 차관과 최종협상을 벌였다.

좌석배치 등 세밀한 ‘각본’ 마련

미국이 다자협상을 원하는 것은 다른 참가국을 통해 북의 핵포기를 유도하고, 북이 핵개발에 나설 경우 다자의 동의를 얻어 유엔에서 무력공격 등의 강경 수단을 사용하기 위한 것으로 중국은 보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다자간 대화에서 미국의 무력공격을 막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는 중국이 북핵과 직접 관련 있는 한국, 일본, 러시아를 ‘당사자’로 6자회담에 끌어들인 원인이 됐다. 중국의 이런 입장은 7월7~10일 동안 노무현 대통령 방문을 통해 한·중간 조율을 거쳐 북한이 8월1일 “6자회담 속 양자회담”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중국은 회담 직전인 8월 당 외교부와 군 대표단이 집중적으로 북한을 방문해 북의 입장을 집중 조율했다. 중국은 회담 기간 동안 북·미 양자 회담에도 주요한 중재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사진/ 중국은 북핵에 관련된 한국과 일본, 러시아 등을 당사자로 회담에 끌어들였다. 한국 수석대표 이수혁 차관보(왼쪽)와 중국 수석대표 왕이 부부장이 양자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연합)


어떤 이는 “중국 역사 5천년간 외교술의 정수를 보는 듯하다”고 말했다. 중국은 회담장 안의 좌석배치에서부터 ‘치밀한 작전’을 세웠다. 지난해 8월 이후 개보수한 댜오위타이(조어대) 내 팡페이위안 회의실에는 6자회담을 위한 6각 테이블이 놓여졌다. 중국의 절묘한 ‘외교술’은 좌석배치에서 빛을 발했다. 테이블은 주최국 중국이 아랫목 격인 북쪽 자리에 앉고, 북한(DPRK)을 시작으로 시계바늘 방향으로 일본(JAPAN), 한국(ROK), 러시아(RUSSIA), 미국(USA) 순으로 좌석이 배치됐다. 중국쪽은 중국을 제외하고 국가명 영문자 첫자의 순서에 따라 북한부터 좌석을 배치했다고 밝혔다. 결과는 미국과 북한 대표단이 바로 나란히 옆자리에 앉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이는 북·미 양자회담을 이끌어내기 위한 중국의 ‘각본’이었다. 실제 이번 6자회담의 핵심은 ‘6자회담 속 양자회담’이었다. 북한과 미국은 북핵 문제의 당사자로 양자를 만나도록 하는 것이 중국의 목적이었고 이는 의도대로 됐다.

북한과 미국은 첫날인 27일 회담장에서 45분 동안 ‘데이트’를 즐긴 것으로 알려졌다. 왕이 부부장은 회견 당시 “북·미 회담을 누가 먼저 제안했느냐”라는 질문에 “양쪽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으로 회담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실제 북한과 미국 대표는 서로가 눈짓을 교환해 회담장 구석에서 ‘밀회’를 즐겼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 차석대표인 위성락 외교통상부 북미국장은 27일 기자회견에서 “회담장 구석에는 작은 의자와 소파들이 많이 배치돼 있었다”면서 “북한과 미국 대표단이 구석에서 얘기를 주고받는 것을 먼발치서 봤다”고 말했다. 중국은 북한과 미국을 비롯해 다른 대표들이 언제든지 ‘양자 접촉’을 할 수 있도록 회담장의 분위기를 꾸몄다. 이는 중국이 지난 4월 북·미·중 3자회담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고안해낸 것이다. 북한은 당시 복도에서 켈리 대표에게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폭탄 선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는 당시 중국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이 슬쩍 자리를 피하거나 북-미가 커피 타임을 하면서 소매를 끌고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길 경우 양자회담이 된다”고 소개한 바 있다.

강화된 외교력으로 북-미 중재 주도

후속 회담이 언제 어디서 열릴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6자대표들은 “이른 시일 내 개최”에 합의한 상태다. 장소로는 스위스 제네바, 모스크바 등이 떠오르고 있으나 여러 정황상 베이징이 유력해 보인다. 왕이 부부장은 차기 회담장소를 “각국이 받아들이는 곳”으로 지칭해 베이징을 강력히 시사했다. 실제 중국은 지난 4월과 이번을 포함해 두 차례 북핵회담을 개최한 소중한 경험을 갖고 있다. 또한 중국은 북한과 동맹국이자 최대 경제지원국으로 ‘강온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중국은 지원 중단 혹은 대폭 지원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북한을 회담장으로 불러낼 ‘현실적 힘’을 갖고 있다. 또 넓은 주중 북한 대사관이 베이징에 있는데다 평양-베이징간 고려항공이 매주 두편씩 북한 대표들의 접근이 쉽다는 이점도 있다. 또 중국은 그간 중재역으로 적극 나서면서 미국, 러시아, 일본, 한국 등 나머지 국가들의 거부감이 많지 않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 중국은 외교무대에서 위상 강화를 노리며 강한 개최 의지를 보이고 있어 베이징 개최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베이징= 하성봉 특파원 sb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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