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추적 ] 2003년08월28일 제474호 

북핵에 안전핀 꽂을까

미국의 태도 변화로 6자회담 기대 높아져… 대타협 기류 형성에 중국도 영향력 행사할 듯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대장정에 들어갔다.

1차 회담은 8월27일부터 사흘간 베이징에서 열린다. 과연 이번 회담에서 대타협의 단초가 마련될 것인가. 현재로선 안갯속이다. 북한과 미국이 기존 입장에서 얼마나 양보한 안을 들고 나오느냐가 관건으로 보인다. 외교 소식통은 “아마 미국은 마지막 날까지 씨름하다가 베이징 회담 전날쯤 우리(한국)에게 연설 초안을 넘겨주지 않을까”라고 전망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회담 직전까지 회담 전략을 노출시켜서는 안 된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의 미묘한 변화 기류가 탐지되긴 한다. 물론 북한이 만족할 수준은 아니다.

북한 유인하려고 선심성 정책 내놓아


사진/ 대화로 북핵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믿고 있는 파월 미 국무장관. 북한은 파월이 협상 주도권을 잡고 있을때 타협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GAMMA)


부시 행정부는 6자대화 틀 내에서 북한과 양자대화를 갖기로 한 것부터 시작해 ‘선핵포기 후협상’에서 ‘선핵포기선언 후협상’으로 완화했고, 지금은 더 유연해진 상태로 알려지고 있다. 또 북한의 나쁜 행동에 대해서는 보상하지 않겠다고 공언해왔으나, 지금은 미래의 좋은 행동에 대해 보상하겠다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북한이 강하게 거부했던 존 볼턴 군축담당 차관이 6자회담 미국 협상대표단에서 배제되었다. 국무부는 8월22일 불가침조약을 수용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북한의 핵 포기시 관계정상화까지 고려할 수 있다는 유인책을 내놓았다. 이전 태도에 견주면 주목할 만한 변화다. 북한의 최대 관심사인 체제보장 방안과 관련해서도 북한의 요구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미 의회 결의까지 해줄 수 있다는 파월 국무장관의 언급이 나왔다. 부시 행정부가 진정으로 북한과 협상을 통해 핵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확고하다면 좋은 성과를 기대해볼 만하다.

북한이 체제보장 방안으로 미국에 제시한 불가침조약 수준을 고수할 것인지가 최대 관심거리다. 북한의 불가침조약 체결 요구가 단지 협상용 기대치인지, 아니면 그 아래 수준의 목표치를 갖고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북한은 일단 이런 미국의 태도변화에 겉으로는 시큰둥하다. 무엇보다 미국 내 강온파의 역학관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듯하다. 국무부 중심의 대북 협상파들의 제안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강경파의 준동에도 잔뜩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꼴이다. 북한이 최근 6자회담을 앞두고 미국과 일본이 회담에 중대한 난관을 조성하고 있다고 경고하고 나선 데서도 짐작할 수 있다.

북한 관영 매체들은 미국이 북한을 겨냥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비핵 문제인 인권문제와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를 6자회담에서 제기하려 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는 부시 행정부가 6자회담에서 핵문제 외 다른 의제를 상정할 가능성을 암시하면서 동시에 북한도 미국의 압박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또 북한은 일본이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자리에서 일본인 납치 문제를 제기하려는 일본 당국의 입장에 대해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우리 공화국의 진지한 노력과 성의에 대한 우롱이고 모독”이라면서 “이를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 정부 관계자도 일본인 납치 문제가 화약고가 될 수 있음을 인정했다. 6자회담이 순탄하지 않음을 예고하는 징후들이다.

섣부른 기대 금물… 동북아 안보에 영향

한국 정부는 마치 살얼음을 걷는 기분인 듯하다. 이번 다자회담이 워낙 유동적이고 변수가 많아 미리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탓이다. 대타협의 관건을 북-미가 쥐고 있긴 하나, 중국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회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북-미간 입장이 평행선을 달릴 것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이라 특히 중국의 회담 전략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북한 핵위기가 중국의 국익에도 심대한 타격을 주고 있다고 인식하면서 조기 타결을 모색하고 있는 중국이 이번 6자회담에서 북-미 간 대립을 그냥 팔짱만 끼고 지켜보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이 8월22일 “이번 회담에서 조정자이자 사회자인 중국이 어떤 태도를 갖느냐에 따라 회담이 잘될 수도 있고, 위험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중국의 달라진 막강한 비중을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사진/ 6자회담을 위해 베이징 ‘건국반점’에 설치된 한국쪽 프레스센터.(연합)


어쩌면 6자회담에 참가하는 각국 모두가 회담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은 물론이고 러시아도 6자회담에서 허수아비로 있지 않겠다는 의지를 공공연히 내비치고 있다. 북핵 문제 해결이라는 총론에는 동의하면서도 각론에서 각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충돌할 수 있음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지금은 북핵과 관련된 정책 조율 대상국이 크게 늘어났다. 이전에는 대체로 미국과 협의하면 됐지만 이제는 일본은 물론 중국, 러시아와도 수시로 조율을 해야 할 복잡한 상황이 도래했다”면서 “6자회담이 시작된 뒤에도 이런 상황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자회담이 만병통치약이 아님을 강조했다.

윤영관 외교부 장관은 8월20일 “핵문제의 속성상 한두번의 회담으로 해결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며 “결과를 지나치게 낙관 혹은 비관하기보다는 긴 해결과정이 이제 시작됐다는 평가가 가장 정확하다”고 말했다. 주변 각국이 6자회담 방식이 핵 등 한반도 문제를 푸는 데 유익한 틀이라는 공감을 표시해 회담의 정례화를 합의한 뒤 다음 회담 일정 정도 잡는 게 1차 목표라는 이야기다. 한국 정부는 장기적으로 6자회담이 동북아시아 다자안전보장체제의 기초가 되었으면 하는 희망도 갖고 있다.


사진/ 베이징 6자회담 수석대표인 이수혁 외교부 차관보(왼쪽)는 8월25일 출국하기에 앞서 “이번 6자회담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라고 밝혔다.(연합)


이번 6자회담은 일단 북한에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의 기회를 주고자 하는 미국의 의도가 깔려 있다. 특히 부시 대통령은 국무부의 대북 협상파들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미국 내 대화론자들은 대화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며, 강경파들은 대화로 안 될 게 뻔하니 명분축적용으로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면서 6자회담에 임하는 부시 행정부의 이중적 태도를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부시 행정부의 내부 역학관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북한이 과거처럼 강경파에게 힘을 실어주는 무모한 수를 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한다. 이는 이번 6자회담을 낙관적으로 보는 또다른 근거이기도 하다. 파월 국무부 장관 등 대북협상파가 주도권을 잡고 있을 때 협상의 유연성을 발휘해 강경파들의 허를 찌를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더이상 협상을 외면하기 어려운 상황

북한 지도부는 이번 6자회담이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고 또다시 미국과의 대화 단절이 초래될 경우를 크게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금 미국 강경파의 발목을 잡고 있는 이라크 전후처리 등 중동 질서가 안정적으로 재편되고, 이를 바탕으로 부시가 내년 재선에 성공한다면 미국 내 대북 협상파의 입지가 크게 축소되어 북한도 더는 기회를 포착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이번 6자회담은 한번에 끝나기보다는 몇 차례 더 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크다. 북한과 미국 내 대북 협상파 모두 어떻게든 협상을 통해 핵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련해, 그렇지 않을 경우의 끔찍한 충돌 시나리오에 직면하기를 원치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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