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추적 ] 2003년08월14일 제472호 

게릴라 공격? 이적행위?

한총련 기습시위가 불러온 정치공세… 그들의 행동을 두고 합법화 중단까지 이야기해야 하나

훈련 중인 장갑차를 민간인이 ‘점거’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더구나 실탄까지 장전돼 있는 상황이었다. 자칫 사고라도 났다면 결과는 상상하기조차 끔찍했을 것이다. 지난 8월7일 오후 경기 포천군 영중면 주한미군 로드리게스 사격장에서 벌어진 한총련 대학생들의 기습시위를 바라보며 가슴을 쓸어내린 것은 이 때문이다.

다행히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고, 시위를 벌이던 학생 12명은 10여분 만에 미군들에 의해 훈련장에서 밀려나온 뒤 경찰에 연행됐다. 군 시설에 민간인이 무단으로 들어가면 군사시설보호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게 된다. 이에 따라 시위 참가 학생 모두에게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학생들의 진입을 막지 못한 사격장 지휘관과 집회신고를 받고도 돌발상황에 대비하지 못한 관할 경찰 관계자에 대한 문책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될 것으로 보였다.

언론과 한나라당의 맹공


사진/ 8월7일 한총련 소속 학생들이 경기 포천군 영중면 주한미군 로드리게스 사격장에서 장갑차 위에 올라가 시위를 벌이다 미군들의 제지를 받고 있다.(연합)


그러나 아니었다. 대학생 10여명이 벌인 시위는 어김없이 정치공세를 불렀고, 급기야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되기에 이르렀다. 주한미군은 8월8일 “법이 허용하는 한 강력한 조치로 처벌하리라 기대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또, 리언 러포트 주한미군사령관은 김희상 청와대 국방보좌관과 전화통화를 하는 자리에서 “미국 내에서 반한운동이 일어날까 우려스럽다. 이런 상태에서 무엇하러 한국에 주둔해야 하느냐고 미국 기자들이 자꾸 물어본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파장이 커지자 고건 국무총리는 사건 발생 이틀 만인 8월9일 “(이번 시위는) 국익과 국민정서에 반하는 중대한 이적행위이고 군사시설에 대한 불법침입 범죄”라며 “법에 의해 엄중 처벌하고, 배후세력도 색출해 엄단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경찰은 붙잡힌 학생들의 호송차량을 막아선 대학생들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등 강경몰이에 나섰다.

일부 언론은 사설을 통해 한총련과 정부를 압박해갔다. <조선일보>는 8월11일치 사설에서 “지난 몇달 동안 우리가 목격한 한총련 시위는 순수한 학생운동 차원의 것이라기보다는 대한민국을 뿌리부터 흔들어놓으려는 도시 게릴라형 공격에 가까운 것이었다. …사정이 이 지경인데도 이 정부는 또다시 ‘한총련 합법화’ 운운을 들먹이고, 난동 사태와 한총련 본질 문제는 분리 처리하겠다는 잠꼬대 같은 소리를 되풀이할 것인가”라고 정부를 질타했다.

이에 앞서 <중앙일보>도 8월9일치 사설에서 “한국대학생총학생회연합 소속 학생들의 미군 사격장 내 시위는 대법원의 판단대로 한총련이 여전히 이적단체임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우리를 위해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훈련을 방해하는 행위는 적화 의지를 버리지 않는 북한을 돕기 위한 행동과 다름없다. 또 올봄 출범한 한총련 지도부의 변신 선언이 위장전술에 불과하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해준다. …안보를 위협한 행동이므로 무슨 이유로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며 강경대응을 촉구했다.

한나라당도 연일 맹공을 퍼부으며 정치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홍사덕 총무는 8월11일 상임운영위에서 “사실상 경찰의 방조 아래 미군부대와 야당 당사 기습사건이 잇달아 일어났다. 행자위와 법사위 등 관련 상임위를 열어 관계장관 문책을 검토할 것이며, 행자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최병렬 대표 역시 “한총련 사태와 같은 불법폭력 시위는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뿌리째 흔드는 것”이라며 “대한민국이 전체적으로 나사가 다 빠진 사회가 됐고, 궁극적인 책임은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고 말했다.


사진/ “화염병 투척 등 과격시위를 하지 않았는데도 일부 언론이 이번 시위를 한총련 합법화와 연결시키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8월11일 열린 한총련 기자회견.(류우종 기자)


상황이 이쯤되자 한총련도 적극 반발하고 나섰다. 자칫 정부의 ‘한총련 합법화’ 움직임에까지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정재욱 한총련 의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북핵 문제 등 민감한 시기에 한-미 양국이 스트라이커 부대 등이 참여하는 전쟁 대비 훈련을 해서는 안 되며, 미국의 전쟁위협에 반대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시위를 벌였다. 화염병 투척 등 과격시위를 하지 않았는데도 일부 언론이 이번 시위를 한총련 합법화와 연결시키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은 8월11일 기자들과 만나 “그간 정부가 수배해제 등 성의를 다하며 변화를 유도해왔으나 한총련은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자기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 한총련의 내부 개혁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한총련 지도부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자체 개혁에 박차 가하는 한총련

한총련은 오는 9월로 예정된 정기 대의원대회를 겨냥해 ‘새 조직 구성을 위한 특별위원회’까지 마련하는 등 자체 개혁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새롭게 구성될 조직은 비운동권과 이른바 ‘PD계열’로 불리는 좌파 학생회까지 포괄하는 새로운 형태가 될 전망이다. 한총련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한총련이 이른바 ‘NL계열’만의 결집체가 아니라 진정한 전국 대학생들의 자치조직이 되기 위해 강령과 규약은 물론 조직구성 자체를 바꿀 계획이다. 이제까지 비공개 조직처럼 운영됐던 방식도 바꿔 간부들도 실명화하는 등 완전 공개조직으로 거듭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미 이를 위해 각 대학 비운동권 및 좌파 학생회와 접촉하고 있으며, 상당수가 참여의사를 밝히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예전의 운동방식을 고수하는 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수도권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변화에 대한 반발이 거센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사건도 한총련 지도부에서는 전혀 예상을 하지 못한 채 지역 차원에서 돌발적으로 벌어졌다는 게 한총련 관계자들의 일치된 설명이다.

한총련 간부를 지낸 30대 인사는 “구속된 12명의 대학생들이 벌인 시위의 방법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시위를 벌인 대학생들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아도 좋다. 한총련 내부에서도 이번 시위에 대한 찬반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불법적인 방법으로라도 자신들의 생각을 알려야 한다고 판단한 대학생들은 법에 따라 처벌하면 그만이다. 이를 두고 국익을 앞세워 ‘이적행위‘라고 몰아세우는 것은 식상하다”고 말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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