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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섹션 : 이슈추적 | 등록 2003.07.31(목) 제47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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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먹구름 낀 ‘핵 로또’의 꿈 부안 주민들로부터 왕따당하는 위도 주민들, 그들도 머리띠를 묶을 것인가
부안은 불가마처럼 들끓고 있었다. 7월25일 오후 전국 최고치를 기록한 전북 부안의 낮 최고기온은 섭씨 33.5도. ‘위도 핵 폐기장 부지 확정 무효 및 노무현 정권 퇴진 군민 결의대회’가 열린 부안군 터미널 앞 네거리는 치솟은 수은주만큼이나 달아올라 있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방울이 비오듯 쏟아지는 뙤약볕 아래서 집회에 참석한 1만여명(이하 주최쪽 추산)의 주민들은 연신 성난 함성을 토해냈다.
점점 깊어지는 뭍과 섬 사이의 골
거리행진이 시작되기 전 김종규 군수를 만나기 위해 부안군청으로 향했다. 서울·인천·대전·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경찰병력 40개 중대가 시가지 전체를 사실상 포위한 것은 이미 며칠 전의 일이다. 지난 7월22일에도 주민 1만여명이 군청 앞으로 몰려들어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경찰병력과 충돌이 빚어져 주민 100여명이 다쳤지만, 부상자들은 환자복을 입고 목발을 짚은 채 다시 거리에 나섰다. “부안군 1년 예산 1855억원 가운데 순수 세입으로 충당되는 돈은 180여억원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전북도와 중앙정부에 의존하고 있다.” 김 군수는 어려운 재정상태 얘기부터 꺼냈다. 그는 “원전수거물관리센터 유치를 부안 발전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주민동의 절차가 부족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김 군수는 “이미 결정된 일. 주민투표 등으로 다시 신임을 묻기에는 늦었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거리에 나선 군민들의 생각은 판이했다. 집회에 참석한 주민 최규식(67·부안읍 동중리)씨는 “민주주의라면 절차를 지켜야 할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군민의 의견을 무시한 채 유치신청을 한 군수 때문에 분노한 군민들은 그런 군수에게 격려 전화를 한 대통령에게도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김종성 주민대책위 집행위원장은 “대통령이 민주적 절차에 대해선 전혀 신경을 안 쓰고, 오히려 군수를 두둔하고 나서는 걸 보고 실망이 크다. 앞으로 상경투쟁이라도 벌여 유치신청을 무효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김두관 행자부 장관과 윤진식 산자부 장관의 부안군 방문이 예정된 7월26일 오전, 핵 폐기장 후보부지로 지정된 위도로 들어가기 위해 굴포 선착장을 찾았다. 전날 벌어진 군민 결의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굴포지역 주민 대부분은 상가를 철시한 채 부안군청으로 몰려갔었다. 배편을 기다리던 한 주민은 “위도에서 핵 폐기장 유치신청을 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자 굴포∼위도간 여객선 출항을 전면 중단시키자는 얘기까지 나왔다”고 전한다. 그의 말이 아니어도 뭍과 섬 사이의 골이 점점 깊어지고 있음을 감지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핵 폐기장 반대운동을 벌여온 위도주민 서대석씨는 “지난 22일 집회에서 경찰의 방패에 맞아 눈가를 다쳤다.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는데, 주변에서 위도 사람 욕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나라도 집회에 참석해 다쳤다는 게 오히려 다행스러웠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서해훼리호 사고가 남긴 슬픈 교훈
뱃길을 40여분 헤쳐 도착한 섬 마을 분위기는 뭍과는 판이했다. 부안군 전역에 핵 폐기장 유치를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나부끼는 것과 달리 위도에는 찬성쪽도 반대쪽도 밖으로 목소리를 드러내지는 않았다. 사나흘 만에 1천여 주민의 90%가 찬성쪽에 도장을 찍었다지만, 낯선 외지인에게 쉽사리 마음을 열지 않았다. 핵 폐기장 예정부지인 위도면 치도리와 대리 일대를 둘러보기 위해 해안가를 따라 시원하게 뚫린 일주도로에 올라섰다. 도로 한켠에서 어망을 길게 늘어뜨려놓은 채 일손을 바삐 놀리는 어민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핵 폐기장 유치 문제를 묻는 취재진에게 어민 백승재(27·위도면 대리)씨는 대뜸 “요즘 멸치 1상자에 얼마나 하는지 아느냐”고 되묻는다. “3~4년 전만 해도 3kg짜리 멸치 1상자에 6만~7만원은 받았다. 그러던 것이 요즘은 2.5kg 1상자당 7천~8천원 수준이다. 그마나 올해는 지난해 비축한 물량이 많아 제값 받기가 더욱 어렵다. 멸치잡이에 필요한 선원 4~5명의 임금이 한달에 각 120만원선이다. 또, 잡아온 멸치 선별작업 등에 필요한 아주머니 5~6명도 일당 3만원은 줘야 한다. 어망 1틀만도 700만원에 달하는데다, 요즘은 1천만원을 쉽게 넘어가는 선별기와 냉장시설 등도 필수다. 어족자원 고갈과 생태계 파괴로 배는 커지고, 조업거리를 멀어만 간다.” ‘빚을 얻어 시작해, 빚 갚으면 남는 것이 없다’는 말은 여느 농어촌과 다를 바 없었다. 이미 무너진 사람들과,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사람들이 그렇게 불안한 동거를 하고 있었다. 또 다른 어민이 다가와 말을 건넨다. “이 도로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아느냐 이게 불쌍한 사람들 핏값으로 깔린 도로다.” 위도 해안선을 따라 깔린 일주도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지난 93년 10월 발생한 서해훼리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모두 290여명. 그 가운데 100여명이 위도 주민이었다. 그들의 목숨 값으로 내려온 정부 지원금으로 해안가를 따라 섬을 일주하는 관광도로가 놓였다. 죽은 자들의 값비싼 희생으로 산 자들의 삶이 조금은 나아진 것이다. 위도 주민들이 핵 폐기장 유치라는 ‘희생’을 통해 수억원대의 직접 ‘보상’을 받겠다고 나선 것도 어쩌면 서해훼리호 사고가 남긴 슬픈 교훈 때문인지 모른다. “유치신청 할 때 기분이라면 꽹가리라도 치고 플래카드라도 내걸고 환영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런데 요즘 분위기가 영 딴판이 됐다.” 위도면사무소 관계자는 “언론 등으로부터 직접 보상이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를 전해들은 주민들이 유치위원들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면사무소 곁에 들어선 핵 폐기장 유치위원회 사무실을 찾았다. 유치위원들은 장관 방문을 앞두고 불안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장관 면담신청을 해놓았지만, 보상에 대한 확약을 받아낼 수 있을지 우려하고 있었다. 이미 7월21일 열린 주민총회에서는 “거액의 보상금을 받지 못하면 유치신청을 취소한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다.
“직접보상, 확실한 언질을 해달라”
박홍규(58) 유치위 총무는 “군수는 부안의 미래를 위해 폐기장 유치신청을 했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살기 위해서 했다. 폐기장 들어선 뒤 다리도 놔주고 골프장도 지어주고, 병원도 만들어준다지만 그런 건 다 필요 없다. 우리는 ‘살길’이 필요하다.” 그는 ‘살길’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어민 대부분이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억대의 빚을 지고 있다. …고향에 왜 좋지 않은 것을 받으려는지 그 기막힌 심정을 헤아려달라. 12대째 살아온 탯줄 묻은 땅인데….” 말을 이어가던 그의 눈시울이 갑자기 붉어졌다. 이날 오후 1시20분에 도착하기로 했던 장관 일행은 오후 2시가 돼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부안군청을 방문했다가 성난 군민들에게 포위돼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 탓이다. 폐기장 예정부지를 둘러본 뒤 일행이 유치위 사무실에 도착하자 불안해하던 유치위원들은 박수로 환영했다. 주민 대표의 짤막한 인사말이 끝나자 윤진식 산자부 장관이 입을 열었다. “위도에서 국책사업인 방폐장 유치를 결정해 줘 고맙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대폭·전폭 지원할 방침이다. 앞으로 1년 동안 4계절 환경영향평가를 거친다. 그 뒤 기본 계획이 확정되면 보상과 지원이 가능하다.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특별법까지 만들 방침이다.” 윤 장관은 ‘지원과 개발’을 되풀이해 강조했지만, 주민들은 ‘확실한 언질’을 원하고 있었다. 위도면 출신 김희순 군의원이 참지 못하고 “죄송한 말씀이지만, 주민들은 가구당 5억원을 준다는 소문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보상금액에 대해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느냐”고 묻고 나선다. 하지만 윤 장관은 “현행 법률상 직접 보상은 어렵다. 선례도 없다. …하지만 중요한 국책사업인 만큼 법률을 개정해서라도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원칙론만 밝혔다. 행자부 장관과 산자부 장관, 전북도지사와 부안군수까지 왔는데도 보상금에 대한 결론이 없자 분위기가 점차 거칠어졌다. 한 60대 주민이 발언에 나섰다. “육지에 나가면 위도놈들 다 때려 죽인다고 아우성이다. 우리 주민들 앞으로 어떻게 살아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방에 적이 있다. 격포만 나가도 불안하다. 11대째 위도에서 살고 있는데, 살길이 막막하다. 보상이 없는 한 폐기장 유치에 찬성할 수 없다.” 격한 말이 터져나오자 유치위원회 관계자는 “지금 흥정을 하자는 것이냐” “나중에 얘기하자”며 맥없이 고함을 지른다. 짧은 방문을 마치고 장관 일행이 총총히 사라진 뒤, 유치위 사무실 밖에서 기다리던 주민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장관이 왔는데 왜 방송을 안 혀.” “땅부터 준 담에 보상하는 게 워디가 있어!” 유치위 관계자들이 설득에 나섰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렸다. “긍께, 워치케 결말을 졌느냐고.” “너그들 (직접 보상) 말면 폐기장이고 뭣이고 못 들어와.” “말어버려. 어디 누가 여그서 하자고 했간디.” 고성이 오가더니 급기야 유치위원과 주민 사이에 삿대질까지 해댄다. 유치신청 뒤 마을 잔치까지 벌였다는 김귀년(72·위도면 진리)씨가 벼락같이 화를 낸다. “긍께, 개 급살을 맞는다고 쓰레기장을 만든다고 혀!” 위도 주민들이 그렇게 서로에게 손가락질을 하기 시작했다.
밀어붙이기식 부지 선정의 말로는…
“우리에게 핵 폐기장 유치는 ‘로또’ 복권과 같다. 한방에 빚 다 갚고 새 인생 시작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게다.” 삶에 지친 한 어민이 체념한 듯 말했다. 그러나 위도 주민의 ‘대박의 꿈’은 쉽지 않아 보인다. 정부가 위도 주민들에게 거액의 직접 보상을 해주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위도 해상봉쇄론’이 나올 정도로 이미 뭍과 섬 사이 반목의 골은 깊어졌다. 섬마을 안에서도 불신의 그림자가 짙어지기 시작한다. ‘대박의 꿈’이 무산된다면, 위도 주민들도 머리띠를 두른 채 뭍으로 쏟아져나올 것이다. 주민동의 절차를 생략한 채 밀어붙이기식으로 진행된 폐기장 부지 선정작업. 지난 17년 동안 반복돼온 치명적 우를 어김없이 되풀이한 정부는 이를 어떻게 막아낼 텐가
부안·위도=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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