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추적 ] 2003년07월24일 제469호 

내무반이 사람잡네

군인 성추행·자살 사건 등이 속출하는 까닭… 대규모 인원을 수직적 통제하는 내무생활이 주범

일반인에게는 낯설지만 군대안에는 ‘성 군기’란 공식용어가 있다. 2000년에 한 장성이 부하 장교 부인을 성추행한 사건이 일어나고, 2001년 1월에는 전방 지역 육군 사단장이 부하 여군 장교를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난 뒤 군대 내에 ‘성적 군기 문란 방지 규정’이 마련됐다. ‘성 군기’란 말도 이때부터 공식적으로 생겼다. 하지만 성추행 피해자는 여군만이 아니다. 지난 7월 9일 고참병의 성추행에 시달린 병사가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하고 7월 13일 육군 대대장이 자기의 당번병을 10여 차례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됐다. 특히 사고 예방을 진두 지휘해야 할 지휘관인 대대장이 병사에게 한 성추행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사진/ 국방부는 성추행, 구타·자살 사건을 막기 위해 성희롱 예방교육등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교육으로 군내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한겨레21)

재미삼은 성추행… 빙산의 일각만 공개

‘어떻게 군대에서 남성끼리 성추행이 일어나느냐’며 여론이 들끓지만, 군 복무를 한 사람들은 남성 병사사이의 성추행이나 성폭력이 그리 낯설지 않다. 남성 병사끼리 성추행은 계급과 상하관계라는 군의 특성과 피해자들도 ‘남자로서 수치스럽다’며 숨겨 외부로 거의 알려지지 않을 뿐이다. 남성 군인끼리의 성폭행 또는 성추행 사건은 자살 원인 조사나 구타 사건 등 다른 형사 재판 과정에서 불거져 극히 일부만 공개된다.

예나 지금이나 군대에서 신병이 새로 전입하면 고참들이 제일 많이 하는 질문이 ‘애인 있느냐’ ‘여자와 자봤냐’ ‘어떻게 성관계를 했느냐’ 등 성 관련 질문이다. 경기도에서 근무하는 이아무개(21) 일병은 “일부 고참들은 휴식 시간에 졸병 2명에게 남녀 역할을 주고 성 행위 장면을 큰 소리를 내며 흉내내게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 고참 병사들은 이런 행위를 성추행이라고 여기지 않고 그냥 재미삼아 한다고 말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12월 휴가병 등 병사 376명을 대상으로 벌인 ‘군대 내 인권 실태 및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기초연구’ 설문조사결과에 따르면 병사들의 9%가 성추행을 당한 사실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 수치는 2000년 정대철 민주당 의원이 국방부 국정감사 때 ‘군대내 성추행 실태 자료’를 통해 병사들의 11%가 신체 애무, 성 경험담 말하기, 자위 행위, 성기 애무 등을 당했거나 보고 들었다고 밝힌 것과 비슷하다. 천주교인권위원회 관계자는 “최근 군 폭력 상담을 하다보면 성추행이나 성폭행으로 정신이상과 의병 전역 요구를 듣게 된다. 군에서 여군에 대한 성추행이나 성폭행 대책은 있지만, 남성 장병에 대한 예방 대책과 교육은 아직 개념도 없다”고 말했다.

군인 성추행사건과 구타·자살사건이 연이어 터져나왔다. 국방부는 땅에 떨어진 군 명예 회복을 위해 7월16일 사고예방대책회의를 열고 31일까지 군기강 특별강화기간으로 정했다. 국방부는 특별종합대책으로 △병영 안 사고를 일으킬 만한 문제를 찾아내고 △지휘관이 직접 성희롱 예방교육을 하고 △익명의 설문조사를 포함해 대대적 조사를 벌이고 △성폭력 가해자 처벌 강화 등을 내놓았다.

과연 재발방지 대책이 될 수 있을까. 7월18일 밤 서울역에서 만난 휴가병 10여명에게 물었더니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다.

경기 북부에서 근무하는 이아무개(21) 상병은 “국방부 대책이란 게 한마디로 공자님 말씀이네요. 중대장이 교육을 하고 몰래 설문조사를 한다고 고참과 졸병이 있는 군대에서 가혹행위가 없어집니까”라고 되물었다.


사진/ 병사들은 낡고 좁은 내무반에 ‘수용’되어 있다. 사생활 보장이 되는 내무반 구조로 바꾸어야 한다.(한겨레21)

고참에 떠는 졸병, 졸병 닥달하는 고참

군 당국은 ‘병 상호간 5대 금지사항’을 정해놓고 있다. 5대 금지사항은 병사들 사이의 집합행위, 지시행위, 얼차려·군기교육 행위, 암기강요 행위를 말한다. 국방부와 육·해·공군 본부에서는 ‘구타 및 가혹행위 근절 지침서’를 예하 부대에 내려보내고, 시간날 때마다 병 상호간 5대 금지사항을 뿌리 뽑으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국가인권위원회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집합행위는 85%, 지시행위는 86%, 얼차려·군기교육 행위는 72%, 암기강요 행위는 77%가 있었다. 병 상호간 5대 금지사항을 보거나 당했을 경우 응답자의 79%는 ‘못 본 척하거나 참았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직속상관에 보고하거나(2%) 헌병대에 신고(0.8%)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못 본 척 하거나 참았던 이유는 ‘보고나 신고를 해도 소용 없을 것 같아서’가 54%였고, ‘병 상호간 부당 대우를 받을 것 같아서’가 17%였다. 현실에서는 군 당국의 사고예방 대책이 병사들에게 별 소용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육군본부 ‘구타 및 가혹행위 근절 시행지침서’는 “병사들의 선·후임병 관계는 수평관계다. 선임병은 후임병에게 조언자일 뿐 병 상호간에는 일체의 지시나 교육, 통제나 제재의 권한이 없으며 이등병부터 병장까지 동일한 임무를 동등하게 부여받고 행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내무실장을 맡고 있는 박아무개(22) 병장이 설명하는 병사들의 세계는 이와 거리가 멀다. “일과를 마친 뒤 병사들의 내무생활은 계급과 입대한 달에 따라 끊어지는 군번에 따라 이루어진다. 대개 ‘짬밥’에 따라 청소조, 군화조, 식기조, 관물조 등으로 저마다 역할이 나누어져 있다.”

병사들 사이의 구타나 성 추행 등은 대부분 내무생활 과정에서 일어난다.

경기 파주에서 근무하는 이아무개 일병은 “현역 복무하는 병사들의 내무생활은 군 생활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간부들은 내무생활에서 병사들의 미묘한 위계질서를 어렴풋하게 알 뿐이다. 설사 이를 잘 알더라도 고참이 졸병들을 잘 휘어잡고 있으면 간부들이 통제하기 편하니까 모른 척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일병은 “만약 같이 내무 생활을 하는 고참이 내게 성추행을 한다면 참 곤혹스러울 것 같다. 사회 같으면 경찰에 신고하거나 피할 수도 있지만, 내무반 고참을 하루라도 안 볼 방법도 없는데다 남자가 남자에게 성추행 당했다고 신고하면 놀림감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군 당국에 따르면, 한 내무반에 30~40명 정도의 병사들이 함께 생활한다. 전방 부대에는 30명 정원에 40명이 옆으로 ‘칼잠’을 자는 좁고 낡은 내무반도 꽤 있다. 내무반에서 병사 1인당 면적이 교도소 독방 면적과 같은 0.7평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현 내무반은 주거 개념이 아니라 수용 개념이다.

침상형 침대형 내무반으로

병사들은 자대 배치를 받으면 전역할 때까지 2년을 한 내무반에서 먹고 자야 한다. 내무생활의 사소한 실수로 선임병에게 고통을 받기도 한다. 병사들은 내무반 생활에 묶여 있기 때문에 선임병에게 구타나 성 추행을 당해도 직속상관에 보고하거나 헌병대에 신고하기를 꺼린다.

군대 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장병들을 대상으로 교육과 상담 등도 중요하다. 하지만 군 복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군 사고 예방을 위해서 1개 소대나 2개 분대가 함께 생활하는 현 침상형 내무반을 침대형 내무반 구조로 바꾸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20대 초·중반의 젊은이 30~40명이 몰려 사는 바람에 이등병이나 일병은 가혹행위나 성추행의 피해자가 되기 때문이다. 군 당국도 내년부터 개인 사생활 보장과 신세대 장병의 정서에 맞게 분대 단위 침대형 내무반으로 개선할 계획을 세웠지만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첨단 전투기나 미사일뿐만 아니라 병사들의 건강과 생명, 자존심도 전투력의 밑바탕이 되므로 국방예산의 투자 우선순위를 조정할 수 있다. 내무반을 바꾸면 군대가 바뀌기 시작한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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