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추적 ] 2003년07월10일 제467호 

네덜란드의 기적은 환상이다

노무현 정부가 내세운 ‘네덜란드형 노사관계’ 이면엔 비정규직 노동자 고용과 임금억제만 있을 뿐

최근 ‘네덜란드형 노사관계’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이 앞으로 참여정부가 추구해나갈 노사관계 모델로서 ‘노조는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하고, 사용자는 노조의 부분적 경영참여를 보장’하는 네덜란드형 노사관계가 바람직하다고 밝힌 뒤부터다. 노동계는 노조의 임금인상 자제 요구에 대해 반발하고 있고, 경영계 역시 한국의 노사관계 문화가 미성숙된 상태에서 노조의 경영참여를 허용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반대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네덜란드형 노사관계에 대해 충분한 이해와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러한 논란들은 자칫 ‘허깨비’를 잡고 싸우는 꼴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경제성장은 선진적 노사관계 때문?


사진/ 네덜란드 노사정 대표들이 지난해 11월28일 노동재단에서 올해 임금인상률을 2.5% 이하로 억제하되 세금감면과 고용지원금을 유지하는 내용의 합의안에 서명하고 있다.(한겨레)


필자는 2002년 4월 하버드대학 유럽연구소에서 열린 네덜란드 노사관계 세미나에 참가한 바 있다. 이 세미나에서 ‘네덜란드형 노사관계의 신화와 수수께끼’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한 암스테르담대학 정치학과의 우베 베커(Uwe Becker) 교수는 그동안 노사정 협의에 의해 경제를 운영함으로써 성장과 고용안정을 가져다준 대표적인 나라로 알려진 네덜란드형 노사관계는 한마디로 외국에 잘못 알려진 ‘신화’에 불과하며, 이는 다른 나라들의 모델이 결코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러한 베커 교수의 주장은 그동안 네덜란드형 노사관계에 대해 막연한 호의를 품고 있던 필자에게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금까지의 지배적인 설명에 의하면 네덜란드의 ‘기적’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1970년대까지 네덜란드의 경제 성적은 매우 나빴다. 노동조합은 비합리적·경직적이었고 고율의 임금인상과 실업으로 경제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러나 80년대 초 노동조합, 사용자, 그리고 정부 등 사회 주체들은 과거 경험을 반성하고 새로운 노사협조 체제를 구축하게 되었다. 이것의 구체적인 형태가 1982년 ‘바세나’(Wassenaar) 협약이다. 이 협약에서 노사 양측은 임금과 고용을 교환하였다. 즉, 노동조합은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하는 대신, 사용자쪽은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이 협약은 당시 고실업, 조직률 저하, 글로벌라이제이션의 공세에 시달렸던 노동조합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어쨌든 이후 네덜란드 경제는 보다 생산적·경쟁적으로 되어 수출·투자·고용의 증가가 나타났다. 이른바 ‘네덜란드의 기적’이었다.

그러나 베커 교수는 이런 설명이 ‘순전한 오류’(simply wrong)라고 말한다. 사실 바세나 협약이 체결된 후 10여년이 지난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네덜란드의 기적’이란 말은 나오지 않았다. 성장률은 2∼3%대로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그다지 높지 않았으며, 실업률 역시 80년대 초반에 비해 떨어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6%대의 고실업률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윤, 투자, 수출 등 다른 경제변수들도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네덜란드의 노사정 협약에 대해 비판적인 평가가 많았다. 한마디로, 바세나 협약에 의한 임금상승 억제가 경제성과의 개선에 별다른 영향을 못 미쳤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90년대 중반부터 경제성장률이 상승하고 실업률이 뚜렷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외국 매스컴들이 네덜란드를 ‘발견’하고 그 괄목할 만한 고성장에 대해 찬양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외국 언론의 평가는 네덜란드에 역수입돼 네덜란드 모델 찬양의 근거가 되었다. 특히 97년에 출판된 비서(Visser)와 허머릭(Hermerijck)의 책 <네덜란드의 기적>(A Dutch Miracle)은 네덜란드 모델의 신화를 만들었으며, 이후 다른 연구자들은 거의 이 책의 내용을 되풀이하고 있는 데 불과하다.

부동산 거품 꺼지자 경기 하락


사진/ 5월29일 청와대에서 대통령 주재로 열린 노사정위원회 회의. 최근 파업을 거치며 노사정위원회는 다시 실효성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한겨레21)


임금억제가 90년대 중반 이후 네덜란드 고성장의 원인이 아니라면 어디서 성장의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해 두 가지 원인을 지적할 수 있다. 우선 네덜란드 모델에 대한 찬양의 근거가 되고 있는 고용증가를 살펴보면 그 대부분(4분의 3)이 파트타임 또는 임시직 등 비정규직 증가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2001년 현재 네덜란드의 파트타임 노동자 비율은 전체 노동자의 3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으며, 특히 여성의 경우 58.1%가 파트타임 노동자로서 ‘네덜란드는 세계 최초로 성별 분업이 풀타임-파트타임으로 이루어진 나라’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들 파트타임 노동자의 임금은 풀타임 노동자에 비해 25% 정도 낮은데 이는 정부가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최저임금을 오랫동안 동결시켰기 때문이다. 결국 값싼 여성 노동력을 대량으로 서비스 부문에 동원함으로써 ‘값싼 성장’을 이룩했던 것이 90년대 중반 이후 네덜란드 고성장의 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파트타임 노동자뿐만 아니라 고용이 불안한 임시노동자의 비율도 매우 높은 편이다. 또 네덜란드의 공식 실업률은 다른 나라에 비해 낮지만 비경제활동인구의 비율은 상대적으로 높은데, 이는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이 실업자가 되기보다는 노동시장으로부터 아예 빠져나와 비경제활동인구로 남아 있음을 뜻한다.

강력한 임금인상 억제와 값싼 파트타임 노동자의 동원 외에도 90년대 중반 이후 네덜란드의 고도성장을 가능케 한 또 하나의 요인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부동산 가격의 거품현상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한 소비확대 방안의 하나로 주택저당 융자(Mortgage loan) 금리에 대해 100% 조세감면 조치를 취하함에 따라 주택 수요가 늘어나고 주택가격이 2배로 뛰는 거품현상이 발생하였다. 주택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주택 소유자들은 자신이 부자가 된 것으로 착각해 소비를 늘리는 이른바 ‘부 효과’(wealth effect)가 발생함으로써 네덜란드 경제는 90년대 중반 이후 소비 주도의 성장을 할 수 있었다.


사진/ 6월25일 열린 철도노조의 집회. 노사정 협의에 의한 네덜란드형 노사관계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류우종 기자)


그러나 네덜란드 모델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2000년께부터 갑자기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주택가격의 거품이 빠지면서 네덜란드 경제는 내수경기에 커다란 타격을 입게 되었다. 오랫동안 임금인상 자제 요구를 받아왔던 노동조합들이 더 이상 임금인상 자제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함에 따라 임금상승률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안정을 유지해왔던 물가도 갑자기 오르기 시작해 2001년 5.1%, 2002년 3.9%의 고인플레를 기록했다. 저임금과 고용불안 등으로 인해 노동생산성 향상률도 2001년 이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실질경제성장률은 2001년 1.3%. 2002년 0.3%로 급락하였으며 지난해 4분기 이래 계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지속하였다. 그동안 네덜란드 경제의 자랑이었던 낮은 실업률마저 무너지기 시작해 2002년 4분기 3.1%, 2003년 1분기 3.6%로 계속 높아지고 있다. 경제불안과 더불어 정치적 혼란도 가중되었는데, 2002년 5월 총선에서 집권당인 노동당-자민당-민주66당 연정(이른바 ‘자줏빛 연정’)이 대패하고 대신 인민당-기민당-자민당 연정이 성립되었지만 새 내각 역시 사회복지 삭감을 둘러싸고 노동당과 대립한 끝에 2002년 10월 붕괴되고 말았다. 2003년 5월 총선에서 승리한 기민당과 자유당 연립정부는 레이건-대처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지향하는 보수적 색채가 짙은데 공공 서비스, 연금, 고용지원, 퇴직금 지원, 의료비 지원 등 각종 사회보장지출을 삭감하겠다고 선언했으며 이에 대해 노동조합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제 아무도 ‘기적’을 얘기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네덜란드의 ‘기적’은 신화에 가득 찬 것임이 드러났다. 고실업과 조직률 저하에 신음하는 노동조합을 자본의 지배 하에 ‘굴복’시켜 사회협약을 맺은 다음, 저임금과 파트타임 노동자 동원, 그리고 부동산 가격의 거품에 편승해 고도성장을 이룬 것이 네덜란드 ‘기적’의 실상이다. 그나마도 그 효과는 겨우 5여년밖에 지속되지 못했으며, 현재는 성장 정체, 주택가격 거품 붕괴, 실업률 상승, 소득분배 악화, 사회복지제도 후퇴, 그리고 정치적 혼란에 시달리고 있다. 이제 아무도 네덜란드의 ‘기적’을 이야기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노무현 정부가 네덜란드 모델을 한국이 지향해야 할 모델로 들고 나온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윤진호 |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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