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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이슈추적 | 등록 2003.06.12(목) 제46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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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어제의 일본이 아니다 유사법제 법안 통과로 안보정책 전기 마련… 전시체제 돌입·대북 선제공격 등의 가능성 열어놔
이상배 한나라당 정책위원장은 6월9일 노무현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등신 외교’라고 깎아내렸다. 또 이날 한나라당은 논평에서 “국민이 분노하는 것은 국빈방문이라는 형식에 얽매여 수모를 자초한 노무현 정부의 아마추어 외교이고, 유사법제에 면죄부를 주는 듯한 노 대통령의 납득하지 못할 발언”이라고 주장했다. 아무리 야당이라도 외국에서 정상외교를 벌이는 국가원수를 원색적으로 비난한 것은 적절하지 못한 행동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거친 비판과는 별개로, 지난 6월6일 노 대통령의 일본 도착 1시간20분 전 국회를 통과한 일본 유사법제의 위험성은 매우 심각하다. 일본 국회를 통과한 ‘유사법제’(有事法制)는 특정한 법률 이름이 아니다. 유사법제는 말 그대로 유사시에 대비한 법과 제도를 통칭한 것으로 △무력공격사태대처법안 △자위대법 개정안 △안전보장회의 설치법 개정안 등 3개 법안을 가리킨다.
막강한 군사력, 한반도·중국 등 영향권에
“지금까지는 선수(일본)가 권투장갑을 끼고 링에 올라가 뻣뻣하게 선 채 먼저 주먹을 날리지는 못하고 가격을 당할 때만 되받아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펀치를 날릴 조점이 보이거나 날렸을 때를 대비해 피하기도 하고 사전준비도 가능하게 됐다.” 유사법제 관련 3개 법안이 통과된 의미를 한 일본 언론은 먼저 주먹을 뻗을 수 있게 된 권투선수에 비유했다. 문제는 일본의 강펀치가 언제, 어디로 날아갈 것이냐다. 구체적으로 과거 일본이 침략했던 한반도·중국·러시아 등으로 주먹을 뻗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게다가 자위대는 세계 5위권 안에 드는 막강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다. 특히 앞선 경제력과 기술을 바탕으로 한 일본의 해·공군력은 아시아 최강으로 꼽힌다. 과거사 문제와 일본의 우익화 움직임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던 노 대통령은 방일 마지막 날인 6월9일 일본 중의원 본회의 연설에서 유사법제에 대한 ‘불안과 의혹’이란 입장을 밝혔다. “불행했던 과거사를 상기시키는 움직임이 일본에서 나올 때마다 한국 등 아시아 각국 국민은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고, 방위안보법제와 평화헌법 개정 논의에 대해서도 의혹과 불안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이러한 불안과 의혹이 전혀 근거 없는 게 아니라면, 또는 과거에 얽매인 감정에만 근거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일본은 아직까지 풀어야 할 과거의 숙제를 다 풀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일본 평화헌법 제9조는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므로 일본 자위대는 국가의 ‘자위’를 목적으로 하는 최소한의 조직이다. 자위대의 임무는 오로지 방어를 뜻하는 ‘전수(專守) 방어’이다. 일본 자위대는 군대 구실을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군대가 아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항복의 조건으로 육해공군을 해체했다. 자위대는 군대가 아니기 때문에 헌병이나 군법회의가 없다. 이 때문에 군인이 아닌 자위대원은 죄를 지으면 민간법원에서 재판을 받는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5월21일 참의원에서 “자위대는 실질적으로 군대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것이 부자연스럽다”며 개헌을 주장한 발언의 배경에는 이런 자위대의 ‘모호한’ 법적지위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유사법제가 통과됨으로써 2차대전 이후 일본이 유지해온 전수방어, 평화헌법, 핵무기를 제조하지 않고,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으며, 핵무기의 반입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비핵 3원칙’이란 안보정책이 일대 전환점을 맞이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6월6일 유사법제가 처리되자 “여야의 폭넓은 합의 아래 법안이 성립된 것은 큰 의의가 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일본 정치사에서 안보 관련법안의 여야 합의로 처리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일본 야당들은 1990년 유엔평화협력법안, 92년 유엔평화유지활동(PKO) 협력법안, 99년 주변사태법, 2001년 태러대책지원법 등 자위대 역할 확대와 해외파견에 등 안보 관련법안에 대해서는 모두 반대해왔다. 물론 김종필 자민령 명예총재처럼 “주권국가에서 최소한 방위를 한다는데 자꾸 가타부타 하는 것도 좀더 신중히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게다가 일본 우익세력은 한국만 해도 민방위법, 위기관리, 비상대비자원관리법 등 일본의 유사법제와 비슷한 법률들을 이미 갖고 있는 터라 ‘나는 되고 너는 안 된다’는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반론도 펴고 있다. 무력공격사태대처법은 ‘무력공격이 발생한 상황이나 무력공격 발생이 임박한 상황’인 무력공격사태와, ‘무력공격 상황에는 이르지 않았지만 사태가 긴박해 무력공격이 예측되는 상황’인 무력공격예측사태를 법 발동요건으로 하고 있다. 발동요건이 무력공격을 받았을 경우뿐만 아니라 ‘가능성’까지 포함해 너무 포괄적이고 자의적이다. 일본이 언제, 누구에게 주먹을 뻗을 것인지는 일본 총리가 알아서 판단할 수 있게 됐다. 이전까지 국제사회가 인정한 유엔평화유지군이나 미군에 대한 ‘후방지원’이란 자위대의 활동 제약을 뛰어넘는 셈이다. 특히 법안 심의과정에서 이시바 시게루 방위청장관이 “적(북한)의 미사일 공격이 예상될 경우 적(북한) 기지에 대한 선제공격도 자위권의 일환”이란 발언을 해 무력공격예측 사태가 북핵과 관련해 대북 선제공격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일기도 했다.
더 이상 자위대의 활동 제약은 없다
자위대는 과거에는 미국에게 단순 기지제공, 일본 영내에서 편의제공에 머물렀으나 자위대가 직접 참여하는 병참지원, 기뢰제거, 임검, 감시·경계, 비전투원 피난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90년대 후반이후 한반도 유사시에는 한반도 주변에서 자위대가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 일본은 99년 10월 한반도 유사시에 한국에 사는 일본인 구출을 위한 세부작전계획을 담은 ‘비전투원 구출대강’을 마련했다. 이 계획은 한국에 특파된 자위대 병력이 북한군의 교전보다는 한국군의 통제 아래 일본인 구출작전에 주력하기로 하는 등 일본이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를 투입할 계획까지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자위대는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경찰예비대 형식으로 발족해 지금에 이르렀다. 북한의 98년 대포동미사일 발사는 99년 미-일 신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에 따른 주변사태법을 탄생시켰고, 지난해부터 불거진 북핵 위기가 유사법제 통과의 빌미가 되는 등 냉전 이후 북한 위협이 일본 재무장의 명분이 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북한 위협’이란 공통의 안보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이지만, 두 나라는 민족감정과 과거사 때문에 북핵문제에 대한 일정한 ‘온도차’가 있다. 한-일 정상회담에서도 고이즈미 총리가 북핵과 관련해 대북 ‘압력’의 필요성을 강조한 반면, 노무현 대통령은 ‘대화’쪽에 무게를 뒀다. 노 대통령의 방일 직전 유사법제 통과 등 일본 안보정책의 핵심개념 변화는 한-일 정상의 온도차를 좁히지 못한 요인으로 보인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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