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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눈치 보기 급급했다 검찰의 수사 유보 내막
2003년 2월3일 김각영 검찰총장은 대북송금 사건 수사의 계속 여부를 결정하는 구수회의를 소집했다. 당시 검찰 내부는 수사불가피론과 수사중단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지난해 10월 수사 착수를 선언하고도 감사원 감사로 ‘개점휴업’ 상태였던 서울지검 형사9부(부장 이인규, 주임검사 차동언)는 2월22일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을 비롯한 관련자 12명을 출국금지하며 수사재개를 서둘렀다. 그러나 검찰 수뇌부는 ‘장고’를 거듭했다. 그 사이 김대중 대통령은 “사법심사는 부적절하다”고 공언했고, 노 당선자쪽은 “검찰은 특검을 받을 각오로 수사해야 한다”며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고건 총리 내정자에 대한 한나라당의 인준 거부 방침을 계기로 노 당선자는 태도를 바꿔갔다. ‘결정판’은 2월3일 문희상 대통령 비서실장 내정자 입에서 나왔다. 감사원 감사로 실체적 진실이 밝혀진 만큼 검찰수사는 실익이 없다는 것이었다. 2월3일 구수회의 참석자의 전언에 따르면, 이인규 부장검사가 수사 강행 주장을 펼치자, 김학재 대검 차장이 나서 “전국 검사장들은 수사유보로 의견을 모았다”고 발언했다. 결국 수사유보로 결론이 났다. 회의 직후 김 총장은 수사유보 결정을 언론에 알렸다. 그의 논리는 문희상 비서실장 내정자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검찰 수사는 사법처리를 전제로 한 절차이고 특히 이 사건 사법처리는 향후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 등 국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2월4일 갤럽이 한 신문사의 의뢰로 실시한 한 여론조사는 검찰 결정이 오판임을 방증하고 있다. 전국 성인 639명을 조사한 결과 검찰수사(55.9%)를 바라는 사람이 이른바 ‘정치적 해결(34.9%)’을 원하는 응답자보다 더 많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뒤라도 해법이 없었던 걸까. 이 사건에 처음부터 깊숙이 관여한, 검찰 고위직 출신의 한 변호사는 유보 결정 사흘 뒤인 2월6일 이런 말을 했다. “검찰은 이제라도 잘못을 고백하고 수사에 나서는 게 최선이다. 특검 가면 절대 안 된다. 보안 유지가 안 된다. 총장이 사실상 주임검사가 되고, 대검 중수부가 전면수사 해야 한다. 무기한 수사와 언론 브리핑 중단, 그리고 신병처리 유보 원칙으로 수사를 진행했어야 했다. 이 사건은 결국 김대중 대통령이 책임지게 돼 있다. 그러면 총장은 ‘지휘권’ 발동해서 ‘불기소’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리고 국회 정보위에 비공개회의를 요청해 수사결과를 보고하고, 국민들에게는 ‘범죄사실 드러났지만 남북관계 등 국익 위해 내용을 세세히 밝힐 수는 없다. 사사로운 이익을 좇은 범죄행위가 아닌 만큼 관련자들은 불기소 처분하기로 했다’고 하고, 총장이 책임을 질 게 있으면 지면 된다.” 검찰 수뇌부 수사유보 결정 배경을 두고 당시 한 검찰 간부는 김 총장 등의 ‘자리보전 욕구’를 꼽았다. 총장이 “‘어떻게 하면 자리를 지킬까’ 그 궁리만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두 번이나 ‘실기’했다. 대선 뒤 바로 해야 했다. 또 한번은 수사를 유보하더라도 감사원 감사 결과 전에 했어야 했다. 임기에 집착하니까 정치권 눈치만 살핀 것이다. 김 총장이 이제라도 수사하면 노 당선자가 총장 바꾸고 싶어도 못 바꾼다. 경질에 따른 정치적 책임을 고스란히 짊어지려 하겠는가. 그러나 이제 임기보장은 물 건너갔다. 김 총장은 때를 놓쳤다.” 그리고 한달 남짓 지난 3월9일 김 총장은 ‘검사와의 대화’에서 노 대통령의 공개적인 불신임 발언이 나온 직후 검찰을 떠났다. 검찰이 그대로 수사를 진행했다면 어땠을까.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현대상선 관련자들을 배임 혐의로 형사처벌하는 선에서 끝낼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북송금 자체는 기소유예 정도가 적당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검사는 범죄 혐의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범인, 범죄사실과 증거를 수사해야 한다”는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제195조)을 저버린 수뇌부의 결정이, 검찰사에 또 하나의 크고 뚜렷한 오점을 남긴 것이다.
강희철·안창현 기자/ 한겨레 사회부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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