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추적 ] 2003년05월22일 제460호 

“설렁탕 두 그릇 값이면…”

한국에 온 유엔아동기금 평양사무소 골크 힌다르만토 기획관이 호소하는 ‘북한 어린이 돕기’

남쪽이 북쪽을 원칙없이 마구 지원했다는 ‘퍼주기’란 말이 나라 밖까지 꽤 퍼진 모양이다.

5월19일 오전 서울 한 호텔에서 만난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 평양사무소의 잉그리트 골크 힌다르만토 영양조정기획관에게 대북지원 물자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물었다. 줄곧 영어로 답하던 그는 통역에게 이 질문을 들은 뒤 우리말로 또박또박 ‘퍼주기’라고 말한 뒤 가볍게 웃었다.

“분배 투명성 확인된다”


사진/ 유엔아동기금 평양사무소의 잉그리트 골크 힌다르만토 영양조정기획관. “북한의 상황이 정말로 좋지 않다”고 말했다.


“북한 동북부 지역에는 직접 트럭으로 지원물량을 가져간다. 유니세프는 1주일 전에 북한 당국에 요청하면 어떤 곳이라도 가서 분배 투명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4년 동안 북한 곳곳을 다녀 이제 지원 물량과 품목이 예측가능해졌다. 무엇보다 1998년 이후 2002년까지의 조사결과, 호전된 어린이 영양상황은 집중적인 외부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그가 서울에 온 것은 북쪽 어린이들의 절박한 상황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가을부터 북핵 관련 위기가 불거지면서, ‘그동안 퍼준 게 핵폭탄이 되어 돌아왔다’는 배신감이 일반 국민 사이에 넓게 퍼졌다. 더구나 국제사회의 지원 우선순위가 전쟁을 치른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등으로 쏠렸다. 그럼 우리가 더 이상 북한 동포를 돕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을까. 힌다르만토 기획관은 99년부터 지금까지 평양에 상주하고 있다. 그는 “2003년 봄 북한이 기아상황에서 빠져나왔으나 여전히 긴급상황이다. 정말로 상황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북한 영양상황은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타이 등과 비슷한 수준에 와 있다. 하지만 북한은 스스로 아이들을 보살필 재원·능력이 없다. 국제사회의 지원이 끊어지면 99년 이전 상황으로 되돌아갈 형편이다.” 현재 북한 어린이 7만명이 심각한 영양실조를 겪고 있다. 유니세프는 심각한 영양실조로 제대로 식사를 못하는 어린이를 위해 치료용 우유인 고영양 우유를 공급하고 있다. 이들에게 지원이 끊어지면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90년대 들어 북한의 5살 미만 사망률이 1천명당 27명에서 48명으로 늘어났다. 96년 남쪽의 5살미만 사망률은 1천명당 7명이었다. 북한 식량난이 심할 때는, 두뇌가 발달할 때인 2살 이하의 젖먹이의 30%가량이 발육부진·만성영양실조 상태에 놓였다. 유아기의 영양실조는 체격감소와 체력저하뿐만 아니라 뇌 발육장애, 심리불안, 자의식 손상 등의 후유증을 남긴다. 교육학과 영양학을 전공한 힌다르만토 기획관은 이런 상황을 ‘세대 손실’이란 개념으로 설명하고, “세대 손실이 되풀이된다면 북한이 앞으로 개방을 하더라도 이를 꾸려나갈 인재가 없어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북한의 성장 잠재력까지 없어진다”고 걱정했다.

올해 모금실적 너무 저조해

유니세프가 올해 북한의 어린이와 여성을 위한 긴급 프로그램 예산으로 잡은 사업비가 1200만달러다. 현재 모금액은 210만달러가량이다. 이 돈은 어린이에 대한 필수의약품과 예방접종, 영양제 공급 등 가장 급한 사업에 드는 300만달러에도 훨씬 못미친다. 유니세프 관계자는 “대개 6월까지 30~40%의 돈이 들어오는데 올해는 5월 말까지 18%가량 밖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양양실조에 걸린 북한 어린이 한명에게 한달간 옥수수와 콩 혼합영양식 450g을 공급하는 데 약 1만원이 든다. 설렁탕 두그릇 값이면 북한 어린이를 한달 동안 먹일 수 있다. 20대 여성의 최대 관심사가 ‘살빼기’인 남쪽 사회가 북쪽 어린이의 영양실조를 모른 체한다면, 후세의 역사가들은 우리 시대를 어떻게 기록할까. 한국 유니세프 02-735-2310.

글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사진 류우종 wjryu@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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