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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체제보장’을 묻는다 미국의 공격 가능성에 불안한 상황… ‘새롭고 대담한 방법’은 핵포기와 맞바꿀 카드
“북한은 왜 먼저 핵무기 보유를 인정했을까?” “정말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을까?” 베이징에서 열린 북-미-중 3자회담에서 북한이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는 4월25일 미국 언론들의 보도 뒤 제기된 의문들이다. 이에 대해 한반도 안팎에서 온갖 ‘해석’이 나오지만 결론은 ‘아직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쟁점이 된 핵무기 보유의 ‘사실관계’과 보유 공개 이유를 확인해줄 북한이 원칙적 입장을 에둘러 낼 뿐 입을 닫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칼집에서 나온 칼은 무섭지 않다?
그런데 북쪽의 침묵보다 눈길을 끄는 게 미국의 침착함이다. 조시 부시 대통령은 24일 “북한이 낡은(old) 협박게임으로 회귀했다”고 말했지만, 26일 후진타오 중국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과 전화통화에서 “북한 핵문제에 대해 외교적 해결방안을 계속 추구할 것”임을 확인했다. 리처드 바우처 미 국무부 대변인은 24일 “우리는 확실히 몇년 동안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해왔다. 그래서 그들이 그런 말을 한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날 바우처 대변인은 “회담은 유익했고 우리는 목표를 이뤘다”고 덧붙였다. 미 행정부 안의 강경파로 꼽히는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도 25일 “부시 대통령과 파월 국무장관이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거들었다. 겉으로만 보면 지난해 10월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가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해 북-미 고위급회담 때 북한의 ‘핵프로그램 시인’ 발언으로 촉발된 긴장과는 딴판이다. 한 한국 정부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회담 뒤 켈리 차관보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는데 이번에는 여유 있는 표정이었다”고 말했다. 대량살상무기 보유 ‘의혹’만으로 이라크를 공격한 미국이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자백’한 북한에 대해 온건하게 대응하는 것은 뜻밖이다. 미국의 태도는 ‘칼집에서 나온 칼은 무섭지 않다’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 미국이나 러시아 같이 수천개의 핵무기를 쌓아놓은 나라들과 달리 소량의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들은 ‘전략적 모호성’이 최선책이다. 비유하자면 강자와 대결하는 약자는 칼집에서 칼을 꺼내지 않고 강자를 겁주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강자는 약자의 칼집에 들어 있는 칼이 얼마나 날카로운지(공격능력), 언제 칼집에서 나올지(공격시점) 몰라 극도로 불안해한다. 하지만 일단 약자가 칼집에서 칼을 뽑으면 압도적으로 힘이 센 강자는 쉽게 대응할 수 있다.
북한의 호전적 발언을 어떻게 볼 것인가
최근 북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한성렬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는 4월10일 코리아 소사이어티와 하버드대 한국연구소가 함께 연 ‘한반도 위기해소에 관한 토론회’에서 “북한이 핵무기 개발 계획을 갖고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미국과 경쟁상대가 되지 않는 작은 나라다”라고 주장했다. 북한 언론들이 ‘우리를 건드리는 자, 지구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며 일당백의 기백을 과시하는 공식주장과는 거리가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2000년 8월 남한 언론사 사장단과 만나 “로켓을 개발해 대륙간탄도탄을 만들어 두세발로 미국을 공격하면 우리가 미국을 이깁니까. 그런데도 미국이 이것으로 트집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에서는 미사일방어(MD) 계획 추진 명분을 염두에 둔 ‘북핵 보유 인정설’이 흘러나오곤 했다. 3월 초 <워싱턴포스트>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은 미국이 북한 핵무기 보유를 인정했다고 보도했다. 미 행정부는 북한의 핵개발을 어쩌면 막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지정학적 악영향에 대한 대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3월5일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미 상원의 한 관계자는 ‘행정부는 천명하지는 않았지만 핵 보유국 북한에 대비해왔으며 이는 고립과 제재, 전쟁억제, 미사일방어로 대처할 수 있는 일’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런 해석을 의식한 듯 미국은 4월25일 베이징 3자회담 이후 “핵위협에 겁먹거나 굴복하지 않고 이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 핵문제 해결은 북한 핵폐기에 있다는 공식입장을 여러 번 확인했다. 이 같은 기류를 반영하듯 미 국방부가 북한이 다른 불량국가나 테러조직에 핵물질을 수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선별적으로 북한 선박의 운항을 봉쇄하는 해상봉쇄계획을 마련했다거나 유엔을 통한 대북제재 여부를 동맹국들과 논의할 예정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핵보유 인정설’과 달리 북한의 핵무기 보유 주장 자체를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유럽을 방문 중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4월26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의 회담에서 “북한이 때때로 내놓은 호전적인 발언들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북한이 말하는 것과 하려는 것 사이에 가끔 모순이 있으며 우리는 추가분석이 필요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방위청 장관도 27일 “핵무기 개발은 핵무기 보유와 그것을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능력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이라크전 이후 불안감 더욱 커져
특히 이라크전이 미국의 압승으로 끝나자 북한의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로동신문> 4월27일치는 “현실은 강력한 물리적 억제수단을 가질 때만이 나라의 자주권과 안전을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이 미국에 위협이 된다면 그에 대한 해결책은 미국 스스로 찾고 해당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추나무에 걸린 연줄처럼 뒤엉킨 북핵의 해법과 관련해 북한이 베이징회담에서 제안한 ‘새롭고 대담한 방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 안에서도 ‘과거와 달라진 것이 없다’와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는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정확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북한은 이 방법을 핵포기와 맞바꿀 카드로 제시했고, 미국도 면밀히 검토한다는 태도다. 이와 관련해 한쪽에서는 미 정부가 성명이나 서신으로 북한 체제의 안정을 보장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그 보장을 지지하는 2중의 보장장치로 북한 핵문제 해결이 가능할 것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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