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추적 ] 2003년05월01일 제457호 

나라종금 로비, 몸통에 직격탄?

검찰 재수사로 정치권 핵심인사 줄줄이 소환… 누가 로비 표적으로 떠오르고 있는가

새 정부 출범 초기 가장 바쁜 조직 가운데 하나는 검찰이다. 6공 정부와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가 모두 그랬다. 정권이 살아 있을 때 드러나지 않았던 범죄사실들이 양파껍질처럼 한겹씩 벗겨지기 때문이다. 이런 ‘법칙’을 증명이라도 하듯 참여정부 초기인 현재 검찰청사의 단골손님 1위는 단연 정치인들이다.

나라종금 로비의혹 사건, 한전 석탄납품 로비의혹 사건, 월드컵 휘장 로비의혹 사건, 수원 ㅅ건설 로비의혹 사건, 안양 ㄷ금고 관련 불법대출 및 기업인수 특혜의혹 사건 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정치인 줄소환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안·염씨는 로비의 깃털일 뿐이다


사진/ 검찰에 출두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 지난 4월28일 안희정(왼쪽)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과 염동연 민주당 인사위원이 각각 오전과 오후에 서울지검 서부지청에 출두했다.(이용호 기자)


이들 사건 가운데도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나라종금 로비의혹 사건이다. 애초 안희정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과 염동연 민주당 인사위원에 대해 언론의 관심이 집중적으로 쏠렸지만, 사실 ‘로비사건’이라는 측면을 중심으로 본다면 이 사건의 본 줄기는 안씨나 염씨 이외의 로비대상들이라고 할 수 있다. ‘꿩 잡는 게 매’라는 속담처럼 로비는 명실상부한 곳에 쏠리게 돼 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위치를 ‘매’라고 보기는 힘들다. 노 대통령이 당선되지 않았더라면 안씨 등은 소환 순위에서도 뒤로 밀렸을 가능성이 높다.

애초 이 사건은 공적자금 비리 사건이었다. 대검찰청 공적자금비리합동단속반은 지난해 6월28일 2조900억원대의 공적자금이 투입되고도 퇴출된 나라종금의 대주주 김호준 전 보성그룹 회장을 횡령과 국외재산도피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그런데 문제는 김 전 회장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비자금 조성 의혹과 이 비자금이 퇴출저지 로비자금으로 쓰인 실마리가 잡히기 시작하면서 불거졌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230억원에 이르는 김 전 회장의 자금관리인이며 보성그룹 한 계열사의 이사인 최아무개씨에 대한 조사에서 안씨와 염씨에 대한 돈 전달 사실을 비롯해 일부 정치인들에 대한 로비자금 수수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최근 <뉴스위크> 한국판에 의해 공개된 지난해 1차 수사기록에 따르면 이 부분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당시 이와 별도로 김 전 회장이 또 다른 로비 주체인 안상태 전 나라종금 대표이사에게 5억~30억원을 건넨 사실도 확인했다. 그러나 돈의 쓰임새와 관련해 검찰은 관련자들의 진술에 의존함으로써 온전한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다.

수사의 성격이 공적자금 수사에서 정·관계 로비의혹 사건으로 번져나갔지만 검찰은 결국 처음 수사대상이었던 공적자금 부분(횡령·배임·재산국외도피 등) 위주로 수사를 마무리했고 김 전 회장을 기소했다. 국민경선이 한창 진행 중이었고, 대선을 앞둔 상황이었다는 점 등을 고려한 검찰의 ‘판단’이 있었다고 추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대선 직전, 한나라당의 의혹 제기와 언론보도로 인해 다시 점화됐다. 이어 지난 3월17일 노 대통령이 법무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국정원 도청의혹 사건과 함께 수사를 지시한 이후에는 재수사가 본격화했다.



비자금 내역서에 등장하는 사람들

1차 수사기록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지난해 수사 초기 단계에서부터 비자금 사용내역서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이를 운용하는 과정에서 돈세탁도 활용했다는 사실 등을 진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2년 6월24일 검찰조사에서 그는 나라종금의 영업정지를 막기 위한 로비자금 등으로 쓰기 위해 10만원짜리 자기앞수표 1만장(10억원어치)을 만들어오라는 지시를 내린 사실도 시인했다. 또 기록에는 검찰이 수사 초기부터 김 전 회장의 자금관리인 최아무개씨의 집을 압수수색해 발견한 비자금 사용내역서(마이크로소프트 엑셀 프로그램으로 작성됨)를 수사과정에서 활용한 사실도 드러난다.

이에 대해 검찰의 한 관계자는 “당시 최씨가 만들었다는 내역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알려진 것처럼 로비 장소·대상·액수 등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는 것이 아니라, 들어오고 나간 돈을 시간 순서대로 자세히 적어놓은, 분량이 상당히 많은 문서”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해 수사상황에서도 이를 토대로 한 건의 로비를 밝히려고 해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는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수사기록은 또 당시 수사팀이 10억원(10만원짜리 수표 1만장분)을 계좌추적한 결과를 정리하면서 당사자들의 해명 위주로 처리함으로써 로비의혹을 제대로 파헤치는 데 실패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10억원 가운데 최소 3690만원이 김희완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의 관련 인물(김씨의 형이 대표로 있는 기업, 그 기업의 전직 전무이사, 김씨의 아내, 김씨의 처남 등)들에게 분산입금됐다. 김 전 회장은 “투자금 반환”이라고 밝혔지만, 검찰은 정작 김씨에 대해서는 조사를 벌이지 않았다. 김씨는 지난해 11월 ‘최규선 게이트’와 관련해 구속기소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상태다.

이외에도 권영해 전 안기부장의 운전기사가 사용한 수표가 28장(280만원)이었고, 김태정 전 법무부 장관의 딸 명의로 70장(700만원)의 수표가 이서된 사실도 확인됐지만, 검찰은 김 전 장관을 조사하지 않았다. 액수는 얼마 안 되지만 수표 4장은 전직 대통령 비서실 지출관을 통해 누군가에게 무통장 송금된 사실도 기록으로 나타나 있다. 권력 주변과 실세 위주로 수표들이 ‘꽂혀’ 있는 셈이다.

검찰이 지난해 계좌추적한 비자금의 액수는 10억원에 불과했지만, 재수사에서는 지난해 제대로 마감하지 못한 내사자료를 토대로 전반적인 로비의혹을 밝힐 태세여서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검찰이 또 다른 로비의 주체인 안상태 전 대표의 계좌에 대해 이례적으로 포괄영장을 발부받는 무리수를 감행한 것도 이 수사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검찰의 명운 걸고 실체에 다가서려나


사진/ 나라종금 수사는 누구를 겨냥하고 있는가. 지난 4월24일 대검 중수부 직원들이 김호준 전 보성그룹 회장 동생이 경영하는 회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있다.(한겨레 황석주 기자)


검찰 안팎에서는 지난 정부 핵심인사이며 현재 여권에 몸담고 있는 ㅎ씨와 ㅂ씨 역시 로비대상이었고 실제 로비가 이뤄졌다는 얘기가 무성하다. 수사를 맡고 있는 대검 중수부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는 “안씨와 염씨를 처리하고 나서도 추가 소환자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기소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지만 이번 재수사의 기초자료로 쓰이고 있는 내사자료만도 1만쪽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사건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크다.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의 언급이 있었고, 거대 야당은 수사가 잘못될 경우 특별검사제도를 도입할 것을 공언하고 있다. 검찰 조직으로서도 앞으로 이어질 정치인 관련 수사의 성패를 좌우할 바로미터가 될 공산이 크다. 검찰총장은 재수사가 시작될 무렵 수사검사에게 “당신 어깨에 검찰의 명운이 걸려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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